[제8공화국] 겁없는 아이들 (14)
기사입력 1997년 04월 07일 14시 58분
허실장과 여인이 객실로 들어섰다. "야, 참 좋다." 여인이 창밖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러댔다. 서울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객실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허실장이 의자에 앉아 놀라움에 몸을 떠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좋아?" "좋지요. 전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마치 별천지 같네요." "별천지?… 그래, 별천지야. 서울에 산다고 다 서울사람이 아니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이런 별천지에서 살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시궁창만 뒤지며 사는 데가 서울이야." 허실장이 주머니에서 당좌수표를 꺼내 천만원을 만들었다. "앉아. 자 이거 받으라고." 여인이 그가 내미는 비닐봉투를 받아 들었다. "이게… 그 테이프인가요? 고마워요. 며칠 밤잠도 못잤었어요." "오빠가 가만 있던가?" "아직 눈치채지 못한거 같아요. 오빠에게 이거 없애라고 할거예요." "그게 좋을거야. 자, 그리고 이거." 그가 수표를 내밀었다.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표를 받으며 믿기지 않는 듯 허실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만원이잖아요." "별천지에서 살고 싶지 않아? 좋은 집, 좋은 승용차, 멋진 해외여행, 그리고 멋진 남자…. 어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생을 바꾸자는 거지. 3천만원 때문에 오빠와 갈등이 있었다면서? 그정도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어." "네！ 어떻게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정말이에요? 할게요. 무엇이든지…. 그게 사실이기만 하면요." "당장 천만원이 생겼잖아. 이름이 장혜정이라고 했지? 오빠는 M호텔 객실 지배인이고." "네." "장혜정. 우리 인생 한번 바꿔보는 거야. 돈 3천만원이 없어 오빠와 싸워? 눈먼 돈이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세상에? 한달만 고생하면 거액이 생겨. 어때. 나와 손잡지 않겠어?" "그게…. 조건이었나요." "물론이지." 테이프를 되돌려 받는 조건이 있었다. 돈을 요구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사 몇번 망하는 바람에 돈은 거덜이 났고 게다가 오빠한테서 빌린 3천만원 때문에 지금 경제사정은 최악의 상태다. 이 남자가 이곳으로 데려올 때는 틀림없이 몸을 원하는 것으로 알고 따라왔다. 그러나 옷을 벗으라는 말 대신 엉뚱한 제의를 해온 것이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어? 약속하면 3천만원 빚 갚아주고 당장 승용차 바꿔주지. 물론 사업자금도 대주고." "정… 말… 이세요." "난 거짓말 안해." 둘이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 시간 이상 무엇인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인이 계속 머리를 끄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