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형제의 반란 (11)
기사입력 1997년 04월 06일 17시 05분
다른 사자와 호랑이들이 퇴근하는 꽁무니에 선 호걸은 간이방사장 쪽으로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뒷모습은 누구나 쓸쓸해 보인다지만 호걸의 뒷모습은 호랑이 공화국의 대권을 쥔 왕답지 않게 초라했다.
기름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하게 흘러 보기 좋던 가죽은 군데군데 뜯겨나가고 그 자리에는 피가 맺혀있었다.
특히 호구의 송곳니가 뒤흔들고 지나간 등에는 지름 10㎝쯤 동그랗게 상처가 나 빨간 피가 맺혔다.
호걸이 간이방사장에 들어섰을 때 다른 사자와 호랑이들은 아파트에 들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100여평 남짓한 간이방사장 벽에는 높이 1m, 폭 60㎝쯤 되는 철문이 3개가 있다.
아파트로 통하는 문이다.
그 문을 지나면 각각 방이 5개씩 나온다.
사육사들이 철문을 열어놓으면 사자와 호랑이는 각자 자기방으로 연결되는 철문으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면 곧바로 식사시간이다.
몇몇 사육사들이 철문을 여닫고 방마다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다른 사육사들은 커다란 양동이에 털만 뽑은 생닭을 담아 방마다 돌아다니며 던져준다.
사자와 호랑이가 가장 맹수다운 모습을 보이는 때가 바로 식사시간이다.
싸울 때를 빼고는 사파리에 있는 동안 흐리멍텅해보이는 눈으로 관람객을 바라보던 맹수들은 복도 끝에서 고기냄새가 나면 눈에 파란 불을 켜고 먹이를 기다린다.
고기를 줄 때도 손을 넣어 던져주면 절대로 안된다.
가로 50㎝, 세로 15㎝쯤 되는 구멍을 통해 멀리서 생닭을 던져준다.
자칫 잘못해서 손이 따라들어갔다가는 고기와 함께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에 다치기 때문이다.
먹이구멍은 방바닥에서 약 3m쯤 위에 있지만 점프력이 그만큼 뛰어난 까닭이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다음날 출근 때까지 쉬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난다.
호걸은 다른 사자와 호랑이가 모두 제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간이방사장에서 기다려야했다.
같은 철문을 쓰는 이웃사촌인 호걸과 호구, 호식을 격리시키려고 잡아둔 것이다.
만약 잘못해서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같은 방에 들어가게 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혈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룸메이트인 호구와 호식의 방문이 잠긴 뒤 호걸은 그제서야 제 방으로 들어갔다.
촘촘한 창살을 사이에 두고 호걸과 호구, 호식은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