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암투 (11)
기사입력 1997년 04월 06일 17시 04분
"무슨말을 했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허동복이 조심스런 시선으로 두천을 바라보았다.
좌별초의 영사가 바라보이는 숲속에서 그들은 마주보고 서 있었다.
"하지만 놈은 저를 어쩌지 못했습지요. 낭장 한단이 저를 빼내 주었습니다."
팔짱을 끼고선 두천의 시선은 앞쪽의 영사로 향해져 있었다. 이미 짙은 어둠에 덮인 영사 주위에는 화톳불이 타오르는 중이다.
"장군, 어제 창고에서 금 삼십근이 내어져 교위 송합이 다섯 부하를 데리고 떠났소이다."
두천이 퍼뜩 시선을 옮겼다.
"어디로 말이냐?"
"그건 모르겠소이다. 그러나 한수를 따라 오덕포까지 간다는건 들었소이다."
"…."
"그자들이 돌아오면 자세한 내막을 알아 낼수 있을거외다."
"군자금이다."
이사이로 낮게 말했지만 허동복이 들었다.
"군자금 이라니요?"
"너는 몰라도 된다."
팔짱을 푼 두천이 허동복을 바라보며 웃었다.
"넌 풀려 났지만 아마 윤의충이 노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지 못합니다. 내실 아씨가 있는한."
허동복이 따라 웃었다.
"아씨의 위세는 만만치 않소이다. 대부인 다음이오."
"하지만 네가 내실부인 종민과는 외사촌간은 커녕 본래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라는 것이 탄로 날수도 있지."
"장군, 어찌 그런일이."
"널 잡아 주리를 튼다면 넌 실토하게 된다."
"아니올시다."
했지만 허동복이 두눈을 어지럽게 굴렸다. 그는 두손을 저었다.
"장군, 저도 뼈가 있는 사내올시다."
"그놈은 악귀같은 놈이다. 뼈쯤은 문제가 아니야."
천천히 머리를 젓던 두천이 문득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놈이 널 벼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예. 장군, 하지만."
"네가 베어졌다면 분명 윤의충의 소행인줄로 모두 믿을 것이다. 그렇지?"
"…."
"그놈 솜씨처럼 한칼로 허리가 잘려졌다면 더욱."
그순간 칼빛이 번쩍였고 허리가 잘려진 허동복이 두토막이 되어 상체 부분부터 풀숲위로 떨어져 내렸다.
두눈이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치켜 떠져 있었다.
"너는 이제 시체가 되어 있는것이 더 유용하게 쓰인다."
두천이 피를 먹은 칼몸을 허동복의 옷자락에 씻었다.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는 숲속이었다.
상체를 편 두천은 앞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백보쯤 밖의 병영에서는 지금 마악 근무교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수하소리가 났고 제각기의 목소리로 응답을 한다. 좌별초는 강군(强軍)이었다.
규율이 강한데다 대부분의 병사가 역전의 용사들이다. 숨을 죽이고 마치 나무기둥처럼 서있던 그는 발을 떼었다.
풀숲을 밟고 두발짝을 떼고난 그는 와락 몸을 틀면서 뒤쪽의 숲을 향해 손을 뿌렸다.
"팍."
수리검이 나무둥치에 박히는 소리였다. 그 순간 바람처럼 달려온 그가 나무둥치 옆에 섰다.
손에는 이미 칼을 뽑아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