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형제의 반란 (10)
기사입력 1997년 04월 04일 15시 42분
천하의 호걸이지만 6천볼트 전기 충격까지 입자 더욱 당황했다. 타 죽을 만큼 강한 전기는 아니었지만 1.5초 간격으로 짜릿한 전기가 등에 작렬하는 상황에서 몸으로 밀어붙이는 호구와 호식을 당해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호걸은 게다가 낮 동안 암호랑이 사이를 오가며 실컷 정사를 나눈 터여서 뒷다리 근육이 풀릴 대로 풀린 형편이었다. 호걸은 일단 위기를 넘기기 위해 아파트 앞 간이방사장까지의 탈출을 노렸지만 좁은 통로를 막고 있는 퇴근길 사자와 호랑이에 자꾸 길이 막혔다. 호걸의 도망은 결과적으로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이어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없었다. 호구와 호식은 무장을 해제한 채 도망가는 호걸을 덮쳐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다. 바로 그때 사파리의 감시자 패트롤카가 클랙슨을 울리며 나타났다. 여느때 같으면 싸움이 나자마자 출동했겠지만 퇴근시간이 된지도 모르고 사파리를 배회하는 사자 한마리를 몰고오느라 늦은 것이다. 클랙슨에도 꼼짝하지 않고 호걸을 공격하던 호구와 호식은 패트롤카에 엉덩이를 받힌 뒤에야 슬금슬금 물러났다. 패트롤카가 흔히 클랙슨으로 싸움을 말리고, 그래도 떨어지지 않으면 가까이에서 부릉부릉 엔진소리를 내 떼어놓는다. 몸을 직접 들이받는 일은 아주 비상사태가 아닌 다음에야 좀처럼 없는 일이다. 호걸의 피습은 그만큼 비상사태였다. 사육사들이 호랑이 공화국의 호걸 정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호걸이 건재해야만 사자와의 세력 균형이 맞아 사파리의 냉전상태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호걸이 없다면 패거리를 이룬 사자들의 습격에 호랑이들은 날마다 집단구타를 당해 결국 세계 최초로 사자와 호랑이가 함께 사는 사파리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게 뻔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할 때 힘의 균형을 교묘하게 맞추는 원리였다. 호구와 호식이 간이방사장 쪽으로 쫓겨간 뒤 호걸은 겨우 일어났다. 다행히 병원으로 실려갈 정도로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보기 좋던 가죽은 군데군데 쥐뜯겨 엉망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