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형제의 반란 (5)
기사입력 1997년 03월 30일 15시 35분
호걸이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암컷을 독점하자 호구와 호식도 여느 호랑이와 다를 게 없는 따분한 신세가 됐다.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된 셈이다. 다른 호랑이야 암컷과의 짜릿한 재미를 애당초 몰라 그런대로 참을 수 있지만 호구와 호식은 달랐다. 한때나마 애인을 하나씩 꿰차고 세상 사는 맛을 즐기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홀아비 신세가 되니 더 죽을 맛이었다.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쿠데타를 안전하게 성공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호구는 옛 애인 호영을 찾아갔다. 다른 암호랑이라면 몰라도 호영은 발정기가 아니라도 맞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발정기 동안 사육사들의 산아제한 때문에 아파트에 연금돼 있다가 며칠전 사파리로 나온 호영은 호구의 노골적 유혹이 귀찮으면서도 크게 반발하지 않고 호구를 받아주었다. 바로 그때, 호걸이 이를 보고 나타나 호구의 뒷목을 물었뜯었다. 사파리의 모든 암호랑이가 자신의 것인데 감히 이를 넘본 수컷은 비록 동생이라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왕의 분노였다. 그러나 더 화가 난 쪽은 호구였다. 이미 며칠전 호걸이 호영을 강간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갈았던 호구는 호걸이 목을 놓아주자 앞발을 치켜세우며 덤벼들었다. 그래도 동생이기 때문에 경고만 주고 끝내려던 호걸은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호구를 보자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치겠다는 생각에 발톱을 세웠다. 호구는 호걸에 비해 덩치도 작고 힘도 달리지만 투지 하나만큼은 사파리 어떤 사자나 호랑이에게 뒤지지 않는 싸움꾼이었다. 호구는 호걸과 마주 섰다가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좌우 연타를 퍼부었다. 강타는 아니었지만 호구의 발톱이 호걸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애송이 버릇 좀 고쳐주자며 가볍게 맞섰던 호걸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선제공격을 받은 것이다. 둘은 다시 맞섰다. 호걸이 정색을 하고 나서자 호구는 적수가 못됐다. 호걸은 힘에 밀려 옆으로 떨어지는 호구의 어깨를 앞발로 찍어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