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겁없는 아이들 (4)
기사입력 1997년 03월 28일 15시 48분
덤벼들었던 쏘나타의 사내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고, 차에는 육감적으로 생긴 여자 혼자다. 보통 때 같으면 절대 그냥 넘길 사람이 아니다. "너 오늘 재수 좋은 줄 알아." "제발, 전 아무것도." "그거 뭐야. 이리 내봐." 여인이 잔뜩 부둥켜안고 있는 비닐봉투 밖으로 비디오 테이프가 비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건 건드리면 안되는 물건이에요." 여인이 질린 얼굴로 칼자국의 사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비닐봉투를 끌어안았다. "그래? 안된다면 더 보고 싶은게 사람 심정이지. 이리 내. 그거 포르노 필름 아냐?" 불쑥 손을 내밀어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토끼눈을 뜬 여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놔！ 네 몸 다치지 않은 것만도 행운이라고 생각해. 그거 안내놓으면 죽는 줄 알아！"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날을 세웠고, 여인은 혀끝이 굳었는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이건…. 포…포르노가… 아니에요. 이건… 정말…." "내놔, 썅！" 칼날이 새파란 잭나이프를 불쑥 내밀었고 여인은 또한번 자지러들었다. "이걸, 옷이 찢겨봐야 정신 차리겠어?" "자, 자요. 이거 가져가면 큰일나요." 벤츠의 사채업자 회장의 고함소리가 또 들려왔다. "뭐해, 빨리 가자니까." "헤헤헤…. 선물 좋은 거 있습니다." 보디가드가 커다란 비닐봉투를 덜렁이며 벤츠로 돌아왔다. "그게 뭐야." "빼앗었어요. 계집애가 가지고 있는데 포르노 필름 같아서요. 테이프에 제목도 없는걸요." "쓸데없는 것 때문에 시간 낭비 말라구." 사내가 차에 오르자 다시 튀기듯 달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검게 번쩍이는 벤츠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 괜찮아?" "조금 상처를 입었지만 어쩔수 없죠." "잘했어. 자 가자구." 이들의 승용차가 장호원에 도착했을 때야 쓰러졌던 사내들이 어기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차에 올랐다. "넌 왜 울어." 훌쩍이며 우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떡해. 그 자식들이 테이프 뺏어갔어." "뭐라구！ 테이프를…. 그걸 왜."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이쿠！ 사내가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테이프다. 그걸 낯도 모르는 녀석들에게 빼앗긴 것이다. "그걸 뺏기면 어떡해！" "그럼 어쩌라는거야. 그 자식 하나 못해치우고." 발악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갈라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