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희망과 고민 (5)
기사입력 1997년 03월 24일 14시 55분
침몰한 경제로 국민들은 극심한 무력감과 허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장님 외나무다리 건너기'같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정국에 노동법 기습통과는 노동계에 불을 질러버렸고,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온 근로자들의 함성에 오히려 위로받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국민들은 1월7일 아침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뭔가 획기적인 정책이 발표될지도 몰라." "이대로는 되는게 없잖아. 경제회생에 대한 모종의 조치가 있겠지." "남은 임기도 생각 해야지." "대통령도 이번이 마지막 연두회견 아냐? 개혁도 좋지만 먹고 사는게 제일 급하잖아. 경제조치가 있겠지?"
국민들의 관심은 비상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금융실명제 보완이며 경제팀 교체, 정책의 변환, 허탈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가시적 정책제시, 그리고 야당과의 격의없는 대화.
TV앞에 모여든 국민들은 앞으로 전개될 회견을 상상하며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노동법 철폐'를 부르짖으며 거리로 뛰쳐나왔던 근로자들까지도 이날은 숨을 죽인채 대통령의 입이 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방에서, 술집에서, 택시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조차 YS비난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은 귀를 세우고 입을 다물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으니 대통령도 이 날만은 뭔가 사죄의 변이 있겠지. 뭔가 희망적 대안도 있을거야. 야당에게 `대안없는 반대'라고 했으니까…. 모종의 조치가 있겠지. 또 있어야 하고."
대통령에게 거는 소박한 희망이다. 그것은 꿈을 심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꿈을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내외신 기자가 모여든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대통령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언가 결의에 찬 꽉 다문 입술이 인상적인 그런 모습이다. 꼴깍! 국민들은 침을 삼키며 그의 입에 시선을 모았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그리고 내외신 기자 여러분"으로 시작된 연설이 시작되었다.
대통령의 모습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져 있었고 국민들에게 설득이나 이해를 구한다기보다는 지시 일변도의 연설이었다.
야당 대표들과 당직자들은 각각 당사에 나와 대통령의 회견을 지켜보고, 대권후보 9룡을 비롯한 각계파 의원들도 의원회관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 충청도, , 호남, 영남, 의 해변마을까지 TV와 라디오에 눈과 귀를 꽂았다.
"아니?" "뭐라고? 이게 아닌데."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국민들은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