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내부의 적 (11)
기사입력 1997년 03월 24일 14시 54분
숨을 몰아쉬던 떠버리는 1대2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슬그머니 돌아섰다. 젖먹던 힘을 다해 도망가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 것이 되는 만큼 대강 싸움을 마무리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물원에 있는 사자도 피를 보면 야성이 되살아 나게 마련이다. 서커스단에서 사자나 호랑이를 사육할 때 날고기를 주지 않고 반드시 끓는 물에 데쳐 주는 것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야성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한번 피맛을 본 천하가 떠버리를 그냥 돌려보낼 리 없었다. 눈을 부라리며 천하와 한라를 쏘아보던 떠버리가 점잖게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천하가 뛰어올라 뒷목을 물었다. 이미 피가 흐를 만큼 상처를 입은 곳을 또다시 물린 떠버리에게는 치명타였다. 게다가 한라도 떠버리의 앞가슴을 파고 들었다. 떠버리는 앞발을 휘두르며 한라라도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펀치에는 아무런 힘도 실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앞뒤에서 공격을 받은 떠버리는 이제 고통 때문에 저항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바로 그때 패트롤카가 싸움을 말렸기에 망정이지 떠버리는 복귀 첫날 사파리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털보파의 대선배 빠삐용의 복수를 하려던 떠버리는 복수는커녕 목숨만 겨우 건지는 망신을 당한 셈이다. 해골파 보스 천하가 조직원 한라와 함께 털보파 두목 떠버리를 집단구타하는 동안 신진파 포철은 암사자와 지내고 있었다. 아직까지 천하와 왕위 타이틀전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자신이 암사자와 즐긴다고 천하가 시비를 건다면 언제든지 붙을 자신이 있는 포철이었기에 마침 발정기를 맞은 암사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포철은 오랜만에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맛봤다. 바로 그 맛 때문에라도 결코 왕위를 내놓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사자 공화국이 떠버리 때문에 한바탕 시끄러웠지만 호랑이 공화국은 여전히 호걸을 정점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 절대 평화란 있을 수 없는 일. 호걸의 동생 호구, 호식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면서 형의 독재에 반감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