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포스티노] 대문호와 우편배달부의 잔잔한 우정

기사입력 1997년 03월 22일 14시 53분


4월 첫주엔 삭막한 현대인의 감성을 따뜻이 감싸는 영화 한편이 비디오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신다.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잔잔한 삶의 모습을 그린 이탈리아 영화 `일포스티노'（Il Postino）. 20세기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외딴섬 우편배달부가 나누는 소박한 우정과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실존인물 파블로 네루다는 의 파렐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924년 `20가지 사랑의 시와 절망의 노래 한곡'으로 라틴아메리카 최고 시인으로 찬사를 받은 주인공. 73년 심장병으로 사망하기까지 단순하고 쉬운말로 노동자나 농부들의 감정과 희망을 대변하는 등 전 생애를 시와 함께 했으며 71년엔 과 레린 평화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무대는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이다. 지중해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마리오는 고기잡이가 싫어 낯선 곳에 대한 동경심을 갖는다. 때마침 좌파시인으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세계적인 명사 네루다가 정치적인 문제로 를 떠나 이 마을에 머물게 되고 세계 각국의 여성팬들로부터 쇄도하는 편지를 전해주는 역할을 자처하면서 마리오는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는다. 위대한 노시인 파블로와 `은유'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른채 무작정 시에 빠져드는 마리오.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을 식당의 아리따운 아가씨 베아트리체. 화면속엔 이들 주인공들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공존한다. 술주정뱅이도 있고 얄팍한 술수로 어촌을 속이는 정치인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시종 아름답고 잔잔하게 흐른다. `칼라 디 소토'의 파도소리, 절벽을 쓰다듬는 바람소리, 아버지의 슬픈 그물, 성모마리아 성당의 종소리, 그리고 별들의 속삭임. 시인과 어울리면서 어느샌가 노동자의 권익에 눈을 뜬 마리오가 농성장에서 시를 낭독하려는 소리와 어울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외국어 영화로서는 22년만에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후보로 선정됐으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배우이자 감독인 마시모 트로이시가 주인공 마리오 역을 맡아 죽음을 감수하면서 열정을 불태운 마지막 작품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감독은 마이클 래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