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어제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기사입력 1997년 03월 19일 13시 59분
"형님, 살살 합시다." "엄살은…, 니가 좀 봐주라." 30여년을 `동지'로 지내다가 오는 22일 개막되는 아디다스컵 프로축구에서 `적'으로 만나는 삼성 김 호 감독（53）과 LG 박병주 감독（55）은 요즘 이런 농담을 자주 주고받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삼성의 믿음직한 `장외후견인'이던 박감독이 LG의 사령탑을 맡게 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대화같지만 이면에서는 상대에 대한 견제의식이 물씬 느껴진다. 그런 두사람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색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평소 형제처럼 지내온 두 사람의 관계로 보아 여차하면 `봐주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선입견 때문이다. 마치 전남과 포항이 `제철형제'라는 점 때문에 오해를 받아온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두사람의 관계를 알고 나면 이러한 추측도 무리는 아니다. 박감독은 군대에서 축구를 배워 국가대표까지 지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성균관대 2년을 마치고 입대했다가 육상선수를 지낸 경력 때문에 경북 영천의 육군부관학교에 스카우트돼 처음 축구화를 신었다. 김 호 감독을 만난 곳은 제대후 입단한 실업팀 제일모직으로 65년 겨울이었다. 당시 김감독은 동래고를 막 졸업했을 때지만 선배인 박감독을 가르쳤을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이후 두사람은 제일모직（65∼69년）을 거쳐 국가대표 청룡（68∼74년）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형제 이상의 우정을 쌓아왔다. 김 호 감독이 94미국월드컵 사령탑을 맡게 된 것도 당시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던 박감독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박감독은 지난 93년 서울신탁은행 축구팀이 해체되면서 야인이 되고 나서도 삼성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수원을 찾았다. 그런데 박감독의 이러한 `삼성 사랑'이 이젠 김감독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바뀌었다. 삼성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알고 있는 박감독과 대적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정상정복을 외치는 삼성 김 호 감독과 바닥권 탈출이 급선무인 LG 박병주 감독.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으로 바뀐 두사람이 주위의 담합우려를 다음달 2일 안양벌 격전에서 어떻게 불식할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