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악귀상륙 (23)
기사입력 1997년 03월 17일 16시 19분
도태일은 야별초 지유 오탄을 벤것이 황판의 수하들이라고 했다. 죽기전에 한 말이었는데 만척도 같이 들었다. 만척은 어금니를 악물고는 벌겋게 불을 밝힌 황판의 저택을 노려 보았다. 이미 늦었다. 묘지처럼 적막하던 저택에서 아우성이 터졌을때는 윤의충의 우세로 금방 알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망이다. 저택안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고 몽골군의 기마 연락병이 질풍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 상황 종료의 보고일 것이다. 저택 밖으로 다시 위사와 몽골병들이 나와 있었다. 멀리서 봐도 활기띤 모습들이다. "이보쇼." 서도명이 다가와 섰다. 그도 초조한듯 눈동자를 산만하게 굴리고 있다. "우리도 이만 떠나야 되지 않겠소?" "어디로 말이오?" 불쑥 그렇게 되 물었다가 만척은 길다랗게 숨을 품었다. 윤의충은 같이 가겠다는 자신을 기어이 뿌리쳤던 것이다. 대신에 화독 한주머니를 가져 갔는데 효과는 본 모양이었다. 만척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제 인시 무렵이다. 날이 밝으려면 얼마남지 않았다. "당신이나 가 보구려. 난 날이 밝을때까지 이곳에 있겠소." 만척이 허물어진 담장위에 앉자 서도명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난 병마사께 보고를 해야." 서도명이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흩어져 있던 부하들이 다가와 그의 주위에 섰다. "두목, 어떻게 하시려우?" 누군가가 그렇게 물었는데 모두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야적 무리가 고려땅에 수백개도 넘게 널려져 있지만 만척이 이끄는 무리처럼 기율이 잡힌곳도 드물다. 싸움에는 야차 같았으며 기강이 섰고 굶주린 백성들은 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모두 불안해 하고있는 것이다. 만척이 다시 저택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자." 그는 무겁게 엉덩이를 들었다. 무모한 짓이다. 열명 남짓한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 넣을수는 없다. 그 순간 시윗소리가 들리더니 옆에 섰던 부하 한명이 숨을 크게 뱉으면서 넘어졌다. "뛰어라！" 엉겁결에 고함을 친 만척은 담장을 건너 뛰었다. 화살 한대가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놈들이 눈치를 챈 것이다. 옆쪽의 빈 저택으로 뛰어든 만척은 앞을 가로막은 서너명의 사내들을 보았다. 그의 뒤를 따르는 부하는 대여섯명 뿐으로 나머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가 없다. "이 몽골 잡종놈들." 만척이 칼집에서 칼을 봅았다. 그리고는 칼과 칼집을 양손에 쥐었다. 그의 목에서 낮은 울림소리가 흘러 나왔는데 마치 들개의 으르렁대는 소리였다. 칼집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허공으로 솟았다가 좌우로 휘젓자 꽃향기가 맡아졌다. 칼집속에 독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화독이다！" 앞을 가로막았던 사내 하나가 와락 외치고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곧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고 나머지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척은 사내들을 건너 뛰었다. 이미 들개 울음 소리를 냈을때부터 두건을 둘러 쓰고 숨을 죽였던 부하들의 뒤를 따랐다. 다시 시윗소리가 귀를 울렸다. 모퉁이를 돌아 나온 만척이 뒤를 돌아 보았을때 따르는 부하는 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