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악귀상륙 (22)
기사입력 1997년 03월 16일 14시 38분
위격은 기공(氣空)무술의 달인이다. 광동의 청양산 도장에서 호법(護法)지위를 받고 금군의 사범이 되었다가 죄를 짓고 전전하더니 황판의 위사장이 된 인물이었다. 허공에 솟아올랐던 위격은 부쩍 다가온 상대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을알았다. 도약력과 체공술이 자신 보다 뒤지지 않을 뿐더러 기법(技法)이 유별났다. 체공하는 동안에도 이놈은 사지를 뒤집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망설일 여유가 없다. 위격은 쥐고있던 독침을 허공에 내쏘았다. 독바늘이다. 한치밖에 안되는 강철바늘의 끝에는 맹독이 묻혀져 있어서 찔리기만 하면 급사를 맞는다. 수백개의 독침이 강한 기공의 힘으로 사내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맞았다. 떨어져 내리는 몸을 가누면서 위격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의 두발이 땅에 닿았을 때 사내도 온몸을 뒤틀면서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이제 화독의 기운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마당에는 수십명의 위사가 뒹굴고 있었다. 위격이 허리를 폈다. 사내도 굽혔던 상체를 세우고 있다. 이보쯤 앞이어서 사내의 얼굴이 다보였다. 젊다. 그리고 아직 멀쩡한 표정이다. 위격이 한걸음을 내디디면서 칼을 옆으로 후려쳤다. 그 순간이었다. 옆으로 비틀린 자신의 빈 옆구리가 선뜻해지더니 사내가 온몸을 붙여왔다. 빠르다. 도대체 이 검법의 종파를 알 수가 없다. 위격은 자신의 기력이 급속도로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칼은 이미 손에서 떨어져 나갔고 겨우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있을 뿐 눈을 크게 뜰 기운도 없다. 허리에서 가슴까지 베어진 것이다. 오장이 벌어진 틈으로 밀려 나오고 있다. "나는 이미 극독(克毒)을 한 몸이다." 바짝 다가붙어 있었으므로 사내의 입술이 위격의 귀에 바짝 붙여졌다. 그가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독을 먹고 죽은 짐승고기로 살아왔기 때문이지." 그는 자신의 손등에 꽂힌 독침 하나를 빼들더니 위격의 볼에 천천히 꽂았다. "으아아아." 위격의 처절한 비명이 바람을 타고 길고 멀리 울렸다.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악귀니라." 윤의충이 다시 몸을 솟구쳤다. 샛문 옆의 담장 위에 내려선 그는 다시 치솟아 올랐다가 옆쪽 건물의 담장 안에 내려섰다. 황판의 침소가 이곳이다. 윤의충은 한걸음에 대청으로 뛰어올랐다. 불이 모두 꺼진 집안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두웠고 막힌 곳이어서 공기의 흐름도 없다. 윤의충이 왼쪽의 미닫이 문쪽으로 한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갑자기 마룻바닥이 밑으로 꺼지면서 그의 몸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천장에서 쇠그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함정이다. 바닥의 깊이는 다섯길이 넘는데다 위에서 덮여진 쇠그물의 무게는 백근이 넘는다. 쇠그물에 싸인 윤의충은 이제 한마리의 짐승이었다. 위쪽의 마루에서 불빛이 어른거리더니 금방 십여개의 등불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위사들이다. 그리고 몽골군도 보였다. "산채로 끌어올려라." 누군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시를 했다. 몽골말이었다. 그가 다시 소리쳤다. "대단한 전과다. 저놈이 바로 악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