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탈북자들 향수 달래는 선생님
기사입력 1997년 03월 14일 14시 26분
축구국가대표 출신으로 실업팀 할렐루야 감독을 지냈던 신현호씨（申鉉浩·44）는 요즘 야릇한 흥분에 싸여 있다. 다름아닌 탈북자들로 구성된 `형제축구팀'의 감독을 맡고부터다. 지난 8일. 형제축구팀이 훈련을 하고 있던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세륜초등학교 운동장. 부모는 함경남도, 장인 장모는 황해도 출신으로 자신의 뿌리 또한 `휴전선 너머'임을 강조하는 그의 표정에는 진정한 `형제애'가 듬뿍 배어있었다. "그나마 축구를 통해 외로움을 이겨보려는 이들을 쉽게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12월말 감독 제의에 선뜻 응했단다. 때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가며 이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처지지만 늘 그의 입가에선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23명의 대식구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어김없이 모여 함께 땀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지치고 있노라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달랠수 있고 서로에 대한 경계심도 눈녹듯 사라진다. 2개월전쯤 일이었을까. 훈련이 끝난뒤 "존경하는 감독 선생님께 경례!"라고 외치는 주장 백호철（31）의 `북한식 답례'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난다. 실력은 아직 조기축구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선（死線）을 넘어온 이들의 투지만큼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게 신감독의 말이다. 14승1무. 전승행진의 밑거름 또한 정신력이었다. "테크닉이 조금 떨어지긴 해도 상당수가 오랫동안 군대에서 체력을 단련해왔기에 팀워크만 가미된다면 조만간 한국 최고의 아마축구팀이 될 것입니다." 지난해 말 납득할만한 설명도 듣지 못한채 실업팀 할렐루야의 사령탑에서 물러난뒤 한동안 심한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던 신현호 감독. 그럼에도 이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할렐루야 어린이 축구교실' 개설식에 참석, 감독직을 수락하며 또한번 넓은 마음을 보인 그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아릅답게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