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내부의 적 (2)
기사입력 1997년 03월 12일 14시 44분
부상에서 돌아온 천하는 충분한 치료와 재활 트레이닝 덕분에 건장한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얼굴과 목덜미 등 상처가 있던 곳에는 털이 미처 나지 않아 보기에는 흉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엄청난 시련을 겪은 화려한 경력 증명서와 같았다. 천하는 더욱 험상궂은 얼굴로 사파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돌아온 사파리를 감상이라도 하는 듯했다. 한라와 백두 등 해골파 조직원들이 모처럼 기를 편 얼굴로 천하의 뒤를 따랐다. 바위 밑 연못을 지날 때였다. 바위 위에 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호구와 눈이 마주쳤다. 호구는 순간 벌떡 일어났다. 긴장한 기색이 뚜렷했다. 긴장하기는 천하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호구는 점프만 하면 천하를 덮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호구의 뒷발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여차하면 뛰어내릴 기세였다. 천하를 호위하던 한라와 백두는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순간 호구는 무장을 풀고 다시 바위 위에 배를 깔고 누웠다. 선제 공격을 하면 일단은 유리하겠지만 한방에 천하를 보내지 못한다면 남은 2마리에게 공격을 당해 오히려 위험할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또 자신이 공격을 하지 않을 경우 만약 천하 일당이 공격을 한다고 해도 바위까지 올라오려면 시간 여유도 충분했다. 그때가서 빠른 걸음으로 도망해 호걸 등 다른 호랑이들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호구가 싸울 뜻을 보이지 않자 천하 역시 눈길만 한번 주고는 다시 가던 걸음을 계속했다. 천하와 가장 원한이 많았던 호구와의 첫 대면은 아무런 일없이 지나갔다. 사파리를 한바퀴 돌아본 천하는 칠성－칠복 등 백골파 식구들이 누워있는 바위쪽으로 가 그들 틈에 누웠다. `여기는 내가 누워야겠으니 너희는 비키라'는 뜻이었다. 바로 뒤에 한라와 백두가 있었지만 순간적이나마 1대4로 절대 불리한 상황이었다. 천하는 바위 근처에서 칠성이 자기 땅이라고 표시해둔 오줌 냄새를 맡았지만 그위에 자신의 오줌을 뿌려 칠성의 뜻을 무시해버린 터였다. 천하가 오줌 누는 모습을 보고 불쾌해있던 칠성은 천하가 아예 바위에 눕자 눈에 불이 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