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20)
기사입력 1997년 03월 02일 23시 21분
동물원이 `가족계획'에 신경을 쓰다보니 사육사들은 언제나 암놈들을 주의 깊게 살핀다. 발정기를 맞은 암놈은 본능적으로 임신을 하기 위해 수놈들을 유혹한다.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수놈으로도 모자라면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수놈쪽으로 돌리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수놈의 몸에 문지르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아무리 목석 같은 수놈이라도 암놈의 뜻대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패트롤카는 사파리에 상주하며 큰 싸움을 말리는 일도 하지만 발정기를 맞은 암놈을 찾아 격리시키는 것도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다. 암놈이 대개 20일에 한번 꼴로 발정기를 맞는 것을 감안하면 20일마다 3∼4일씩 `강제연금'을 당하는 셈이다. 다른 암놈들이 피임 때문에 정기적으로 좁고 어두운 아파트에서 고생을 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젊고 힘 좋은 사자 천하를 애인으로 둔 유리는 `귀한 몸'이 됐다. 임신을 돕는 호르몬주사를 맞고 임신에 대비해 영양제를 먹기도 했다. 사육사들의 관심은 온통 유리의 임신에 쏠려 있었다. 유리는 천하를 만난 지 2달만에 임신했다. 사육사들의 정성이 결실을 본 셈이다. 암놈이 임신한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20일에 한번씩 있는 발정기가 없어지면 임신한 것이다. 사육사들은 유리의 임신을 확인하자 순산을 돕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평소 수놈을 밝히는 유리인 만큼 다른 사자나 호랑이와 바람 피우는 것을 막기 위해 아파트에 격리시키는 한편 마음의 안정을 위해 오직 천하만 저녁에 아파트에서 만나도록 했다. 아무리 정조관념이 없던 유리지만 임신을 하자 달라졌다. 종족을 번성시키려는 본능 탓이었다. 그러나 첫 임신이어서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졌고, 불안해하는 기미도 보였다. 호랑이의 임시기간은 105일. 사육사들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출산의 날을 기다렸지만 유리는 끝내 유산을 하고 말았다. 구체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초산이기 때문으로 짐작될 뿐이다. 사육사들이 유리에 온갖 신경을 쓰는 동안에도 다른 사자들은 왕성한 성욕으로 암호랑이들을 즐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