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악귀상륙 (8)
기사입력 1997년 02월 28일 17시 38분
도태일이 찾아온 것은 몽골장교들이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방에 들어선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귀인께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두 손을 모은 그가 읍을 했다. "준비가 모두 되었으니 모시겠습니다." "먼가?" "성내에 있으니 술 한 병 비울 시간이면 닿습니다." 그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주인 정금이 다가와 읍을 했다. 흰 염소수염에 외소한 체구의 사내였다. "다녀오십시오. 나으리." 이제까지 얼굴도 비치지 않던 정금이다. 도태일은 물론 정금까지 제표소동을 알고 있는 것이다. 밖은 칠흙을 덮은 것처럼 어두웠다. 드문드문 불빛이 보이는 것은 몽골 주둔군과 야별초의 병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다. 불을 켠 민가는 없다. 예빈관 앞에는 도태일의 수하 십여인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들은 곧 한무리를 이루어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사내 두 명이 앞장을 서서 각기 횃불을 치켜들고 있었으므로 마치 일대의 군사가 몰려가는 듯한 당당한 기세였다. 서너 명이 한 조가 된 몽골병이 그들을 보더니 손을 저으며 스치고 지나갔다. 심야의 통행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맨정신으로 나다니는 사람은 없다. 남자라면 영락없이 몽골군에 끌려가 문초를 받게되고, 여자는 노소를 불문하고 겁탈 당하는 것이다. 세 명이 한 조가 된 야별초가 다가왔다. 그들은 이쪽을 보더니 잠자코 길가로 비켜섰는데 이쪽 일행 누군가가 웃음소리를 내었다. 비웃음이다. 도태일이 옆에서 걷는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귀인께선 몇명이나 필요하십니까?" "몇명이나 있어?" 되묻자 그가 빙긋 웃었다. "아이가 삼십오 명, 계집이 이십이 명이오. 모두 쓸만 합니다." "모두 사지." "아이는 계집아이가 금자 두 닢이고 사내아이는 한 닢이오. 계집은 금자 네 닢부터 시작합니다." "아이는 가다가 반은 죽는다고 들었어." "묘책이 있지요." 도태일이 바짝 다가와 걸었다. "계집에게 아이를 하나씩 맡기는 것입니다. 지난번 상인에게 그렇게 시켰더니 아이 열한 명 중에서 둘밖에 안죽었습니다." "……." "계집은 모두 어미의 본능이 있지요. 아이를 맡기면 만리길도 잘 견딜 겁니다." 윤의충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어둠 속을 걷던 그들은 곧 폐허가 된 저택으로 들어섰다. 대문이 있었지만 허물어진 담장을 건너 들어선 것이다. 중문을 지나고 다시 본채로 들어가는 샛문을 넘자 앞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희끗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오십니까?" 사내들은 세 명이었다. 감시역이다. 마당에 선 도태일이 윤의충에게 말했다. "계집부터 보시지요. 모두 깨끗이 씻겼으니 천천히 즐기셔도 됩니다." 도태일이 앞장섰다. 본채의 마루 위로 올라선 그는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 옆쪽의 방문을 열어제쳤다.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선 윤의충은 숨을 들이마셨다. 여자들이 벽에 붙어서 있었다. 두 손을 묶어 천장에 매달았는데 모두 알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