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대권을 향한 용들의 전쟁
기사입력 1997년 02월 26일 15시 00분
1998년 2월 하순. 꽃샘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이날. 대통령 취임식장은 추위에 아랑곳 없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을 지켜보려는 외국 사절단, 그리고 이 자리에 초청된 국내외 인사, 보도진, 경호원.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가슴은 찬바람만큼이나 쓸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두문불출 꼼짝을 않는 전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의 노력으로 교도소 생활을 끝내기는 했지만 차마 국민들 앞에 나설 수 없는 , 두 전직 대통령. 전직 대통령이 셋이나 있으면서도 자랑스럽게 나설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은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국민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신 기자들은 마이크를 시민들에게 들이대기에 바빴다. "전직 대통령이 없는 취임식 입니다. 과연 지금 세 전직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민들 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침튀기며 보도하지만 국민들은 뭐라 변명할 입이 없었다. 제 15대 대통령 당선자는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새 대통령을 축복하고 이제는 정말 나라를 잘 이끌어 국가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 주기를 국민들은 신(神)에게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이번만은 퇴임후 국민들과 떳떳이 어울릴 수 있는, 그리고 진정한 민주화와 경제 일등국이 될 대통령이 되게 해주소서.' 이때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로써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후임자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입에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흔들기는 하지만 취임식 때의 그 당당하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5년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고 대통령 취임식에 나서 "문민정부로서 위로부터 맑아지는 정부, 신명나는 정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통령이 될것이다"라며 7공화국 막을 열었다. "5년. 그 세월이 이렇게 빠른가? 그리고 차기 대통령은 내게 정치보복은 하지 않을까?" 대통령의 취임초 지지율 90%라는 전대미문의 국민들 성원속에 출발했던 7공화국이다. "5년전 취임식때 이렇게 다짐 했었지. 이땅에 부정부패 그리고 군사정권의 잔재를 모조리 쓸어내야지. 경제를 회복시키고 선진국에 진입해야지." 대통령에 당선되던 시간부터 국내 모든 기밀을 한손에 움켜잡았다. 약점없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조해하는 대통령의 심정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5년후 퇴임할 때는 지금보다 더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나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다. 역사에 길이 빛날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5년 세월이 번개처럼 흘러 새 대통령 취임식을 맞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