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일기] 이민영 (5)
기사입력 1997년 02월 24일 14시 13분
난 길눈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꽝'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 하나. 학교 버스를 타고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장언니에게 `구의동에 내려주세요'라고 했는데 언니가 그만 우이동에 내려준 것이다. 난생 처음 보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엉엉 우는 것이었다. 이때 지나가던 사람에게 100원을 받아서 다시 버스를 탔는데, 이번엔 분명히 구의동에서 내렸지만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일까. 한번 방향 감각을 잃으니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간신히 돈을 구해 집에 전화를 걸었고, 온 가족이 날 데리러 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건 곳이 바로 집에서 5분 거리였던 것이다. 지금도 한번 가본 곳은 절대로 나 혼자 찾아 갈 수가 없다. 4∼5번은 가봐야지 나 혼자 찾아갈 정도로 방향감각 만큼은 형편이 없다. 어렸을 때 기억을 더듬으면 반드시 떠오르는 것은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엄마가 초등학교 때까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사시면서 3남매를 보살펴 주셨다. 난 막내답게 언니, 오빠를 부리면서 즐겁게 놀았지만, 어디 엄마의 손길을 따를 수 있으랴. 엄마의 빈자리를 할머니가 채워주셨다. 난 오빠에게 100원을 주고－당시 어린이공원에 가면 회전목마를 100원에 탈 수 있었다_ 한시간 동안 말놀이를 하는 장난꾸러기였지만, 외할머니에겐 `귀여운 막내 손녀'였다. 나의 어리광을 다 받아주시던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뜨셨다. 밤새 병간호를 하던 우리가 잠시 잠든 새벽에 이 세상을 조용히 떠나신 것이다. 평화롭게 잠든 것 같은 할머니 앞에서 어찌나 울었던지.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가슴 한켠이 아파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