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수첩] 겨울 나그네
기사입력 1997년 02월 18일 14시 49분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한다. 가슴을 울려주는 깊은 울림의 사랑이야기보다는 하룻밤의 달콤함을 위한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한다. 이런 시대에 두 젊은 영혼의 사랑이야기를 뮤지컬로 올린 무대가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과 에이콤이 공동제작, 지난 14일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겨울 나그네'가 그것이다. 원작의 소설로,
주연의 영화로 우리에게 낯익은 작품이다. 지금의 30,40대는 지난 80년대, 비극적이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펼친 민우와 다혜 그리고 현태가 보여준 사랑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 뮤지컬로 부활된 `겨울 나그네'는 30,40대에겐 추억을, 20대들에게는 사랑의 참의미를 심어주겠다는 기획의도로 4년에 걸친 기획과 10억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다. 이 무대는 몇가지 점에서 우리 대형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선 객석을 압도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무대미술이다. 한국뮤지컬 대상에서 2년 연속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박동우는 대학 캠퍼스, 공장, 눈내리는 묘지 등을 매우 사실감 넘치게 묘사했다. 드라마를 감싸안는 미술적인 기능이 압권이었고 시각적인 면에서도 아름다웠다. 두번째로는 김형석의 작곡과 피터 케이시의 편곡이 눈길을 끌었다. 대중가요 작곡가로 잘 알려진 김형석은 `스타가 될거야'에 이은 두번째 뮤지컬 작곡에서 점차 뮤지컬 음악의 맛을 살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발라드 풍의 선율은 감미롭고 따뜻했다. 세번째로 윤호진 연출의 서정성이다. 윤호진은 작품을 매우 세련되게 다듬고 정제해 전체적으로 미학성이 돋보이는 무대로 만들어냈다. 정갈한 서정시 한편을 들려주는 듯한 분위기였다. 서병구의 안무는 그동안의 작업에 비해 새로운 움직임과 동작을 많이 사용했고, 하용수의 의상은 고풍스러움과 현대성을 잘 가미시킨 수작을 선보였다. 반면 연기진들은 수준차이가 다소 심해 극 전체를 아우러주는 힘과 세기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 화제를 모으면서 주인공 민우와 다혜로 캐스팅된 서창우와 윤손하는 신선미를 갖추긴 했으나 깊은 감동을 끌어내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이 뮤지컬이 관객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메시지는 애잔한 사랑의 슬픔이다. 비록 그 깊은 맛의 노래와 연기로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선사하지는 못했지만 신인치고는 가창력이 뛰어나 연기력을 보강하면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여기에 현태역의 유희성은 관록의 연기로 마담역의 임희숙은 노련미로 무대를 채워주면서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온통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조용하게 사랑의 참의미를 새기고 싶은 관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무대다. 3월9일까지. 580－1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