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장외] '달리는 노래방' 요지경속 롯데버스
기사입력 1997년 02월 17일 15시 06분
"뽕짝이 최고야." 호주사람들은 오후 3시면 희한한 광경을 발견하게 된다. 총천연색 영문이 현란하게 쓰인 대형버스에 운전수도 배가 간장독만큼이나 나온 `코쟁이'인데 버스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는 영 이상하다. 호주에 스프링캠프를 차린 롯데 선수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어깨를 기대는 순간이다. 조성옥 코치의 사회로 `달리는 노래방'이 심심찮게 열리기 때문이다. 16일 있었던 광경. "오늘은 신인들이 한곡씩 뽑아보지." 조코치의 말을 고참 김선일이 곧바로 이어 받는다. "신인 이영주 앞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영주가 쭈뼛거리며 선곡을 못하자 여기저기서 왁자한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 나온다. "학교는 어디 나왔노, 마. 망신살 뻗친다, 퍼뜩 드가라." 이어 신인 이동욱이 "한곡 뽑겠습니다"며 멋들어지게 신세대 노래를 불러 제끼자 이번에는 "지난번 회식때와 같은 곡이잖아. 뽕짝 없어?"라며 아우성이다. 자갈치 시장같은 버스안에서 호주인 운전기사는 신기하다는 듯 노랫소리에 장단을 맞춰 어깨를 마구 흔든다. 선배들의 성화에 못이긴 이동욱은 "이번엔 조성옥 코치님이 부르겠습니다."하고 겁없이 마이크를 들이민다. 조코치가 손사래를 치자 버스안에는 "와∼"하는 함성과 박수가 터진다. 숨죽이고 조코치의 노래만 기다리던 선수들은 결국 모두 기가 질리고 말았다. "난 노래 못한데이, 지금부터 내게 마이크를 넘기는 선수는 내일 훈련서 펑고 1천개 추가야！" 버스를 내리던 신인 이영주는 "프로는 일단 노래부터 잘 부르고 볼 일"이라며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