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장외] 심재학의 도깨비 방망이 고별식
기사입력 1997년 02월 16일 14시 48분
꼭꼭 숨겨두었던 마지막 한자루의 배트를 내줬다. 섭섭했지만 함박 웃음으로 좋아하는 후배의 모습에 왠지 흐뭇했단다. LG 심재학（24）이 괌 캠프의 룸메이트 손지환（19）에게 사사키 배트를 선물했다. 예사 방망이가 아니다. 작년 심재학의 마지막 홈런 세방을 뿜어낸 것으로 잠실구장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14개）의 숨은 공로자다. 올해부터 미즈노 배트를 쓰기로 한 심재학은 다음달 오키나와 캠프서의 연습경기때 정든 방망이와 고별식을 갖기위해 이번 전훈에 소중히 싸들고 왔다. 함께 1208호실을 쓰게된 얄미운 새내기 손지환이 `명검'을 몰라볼리 없다. 선배의 방을 들락거리며 틈틈이 기회를 엿보더니 날을 골라 시위를 벌였다. 방망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이 확 오네요" "제 손에 딱 맞아요"라며 쉴새없이 떠들었다. 마음약한 선배가 떨떠름한 얼굴로 백기를 들었다. "그럼 너가 가져야지." 냉큼 배트를 나꿔챈 손지환은 선배가 행여 변덕이라도 부릴새라 그 자리에서 배트 곳곳의 `14'（심의 배번）를 꼼꼼히 지우고 자신의 배번인 `3'을 빼곡이 써넣었다. "밸런스가 잘 잡힌, 잘 빠진 놈이에요. 구홍이 형도 탐내던 방망인데…." 아쉬운 표정의 심재학을 손지환이 위로한다. "아껴뒀다가 오키나와에서 힘차게 돌릴게요. 형 대신 제가 화끈한 고별식을 해준다니까요." 괌 라데라콘도의 1208호실, 옛주인 방과 마주보는 새주인의 방에서 `명검'은 여전히 새근새근 숨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