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트만씨] 예술적 충격-감동 준 한국의 미
기사입력 1997년 02월 16일 14시 29분
한 이방인 예술가가 전남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千佛千塔)'을 깊이 있게 파헤친 책과 사진작품들을 발표, 눈길을 끈다.
독일 함부르크예술대학 교수인 요헨 힐트만씨.
예술이론가이자 사진작가겸 실험적인 비디오 영화작가인 그는, `미륵－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학고재)를 내고, 책속에 실은 운주사 관련 흑백사진 38점을 학고재 화랑(739－4937)에서 전시 판매중이다.
"아내를 통해 한국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 오기전부터 아내를 통해 한국의 농촌문화, 민중문화에 친숙해 있었으니까요."
아내 송현숙씨는 북부독일에서는 꽤 명성을 얻고 있는 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 지난해 9월에는 서울 관훈동 금호갤러리에서 첫고국전을 가져 국내 신고식을 마친 바 있다.
"아내야말로 이번 작품들의 진짜 작가나 마찬가지"라는 빌트만씨는 시골아낙네처럼 순박한 아내 송씨야말로 자신이 찾은 `한국' 그자체라고 말한다.
힐트만씨가 운주사 천불천탑을 처음 본 것은 지난 85년. 당시 한국에 공부하러 간 아내와 아들(한송 힐트만)이 보고싶어 왔던 참이었다.
"탑과 불상들이 논밭과 산속에 그대로 놓여져있고, 농부들은 그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만산계곡의 정경에 엄청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삶과 신앙, 예술이 혼연일체가 돼 있었습니다."
서구현대미술의 한계인 `예술을 위한 인위적인 예술'을 극복하는 충격적인 현장을 발견한 것이다.
86년 교환교수로도 와서 송기숙 교수, 작가 황석영씨 등과 폭넓은 교우관계도 가졌던 그는, "한국의 전통농촌은 그자체가 곧 살아있는 `한국미'의 전형인데, 산업화로 파괴됐다"면서
"유럽에서 150년간 이뤄진 산업발전이 한국에서 20년만에 이뤄져 소중한 문화적 전통과 유산의 파괴속도가 빠르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 84년 독일이 낳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와 `벌꿀펌프'라는 공동작업을 벌이는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그는, "나는 전생에 한국 승려인가보다"라는 농과 함께
"아내가 원하면 노후를 한국 시골에서 보낼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래에는 아내와 함께 한국의 농경적 삶의 문화에 녹아있는 가치를 재현해보는 기록영화 `신진대사:누에에서 명주옷까지'를 만들고 있다.
힐트만 부부는 학고재 전시가 끝난 다음날인 19일 출국할 예정. 전시는 광주송원갤러리(21∼27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