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 (7)
기사입력 1997년 02월 14일 13시 51분
시험 합사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죽은 것은 사육사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사자와 호랑이의 합사 계획이 무산될 위기였다. 1대1 합사에서 큰 사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2대1 합사에서의 사고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신호탄이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회의를 거듭한 끝에 합사를 계속 추진키로 결정했다. 사육사들은 호랑이와 사자를 여러 마리씩 계속 넣되 가능한 한 힘의 균형을 맞추기로 했다. 사육사들의 이같은 노력으로 별다른 사고가 없자 2대2, 3대3으로 수를 늘려갔다. 어느새 5대5까지 합사 규모가 늘어났다. 호랑이는 호걸 호구 호식 호돌 4형제에 미호 등 5마리가 뽑혔다. 전력으로 보면 미호가 조금 처졌지만 호걸을 정점으로 한 4형제가 워낙 강해 어떤 사자를 만나든지 5대5 대결에서는 조금도 밀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호걸 4형제는 과연 강했다. 이미 한두번씩 사자와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 이들은 간이 방사장에 들어가자마자 먼저 와있던 사자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곳곳에서 싸움이 붙었다. 특히 호걸의 활약은 눈부셨다. 호랑이 특유의 스피드에 힘까지 갖춘 호걸은 제또래 가운데 `골목대장'답게 자기 몫으로 사자 한 마리를 맡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사자가 미처 공격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덮친 호걸은 사자의 앞다리를 물고 앞발로 얼굴을 짓눌렀다. 밑에 깔린 사자는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낑낑거렸다. 앞다리 공격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을 한 호걸은 이번에는 목덜미로 공략 포인트를 옮겼다. 타고난 싸움꾼의 현란한 솜씨였다. 사자는 조금만 더 있으면 숨이 끊어질 위기였다. 바로 그때였다. 저쪽 구석에서 막내 호돌이 사자 밑에 깔려 비명을 지르자 호걸은 날 듯이 달려가 호돌 위에 있던 사자를 한방에 쓰러뜨렸다. 뜻밖의 적에 놀란 사자는 몇차례 공격을 시도하다가 힘겨운 상대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냅다 줄행랑을 놓았다. 호걸은 뒤쫓기 시작했다. 사자 같으면 도망가는 적을 따라가 끝장을 보지는 않았겠지만 호걸은 호랑이 특유의 잔인성을 보인 것이다. 스피드에서 단연 앞선 호걸은 크게 점프를 하며 사자를 뒤에서 덮쳐 목덜미를 낚아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