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6)
기사입력 1997년 02월 13일 14시 25분
세계 최초로 사자와 호랑이를 합사하기 위한 실험은 계속됐다. 1대1 합사에 성공을 거둔 사육사들은 다음 단계로 1대2, 2대3의 수적 불균형 합사를 시작했다. 사파리에 사자와 호랑이가 10여마리씩 함께 살려면 순간적으로 수적 균형을 이루지 못할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다. 첫번째 1대2 합사는 4년생 호랑이 장쇠와 3년생 사자 사룡－사설 형제의 만남이었다. 어려서부터 3형제 가운데 가장 기골이 장대한 장쇠는 자기보다 작은 사자 두 마리를 보자 탐색전 없이 바로 달려 들었다. 이미 사자와의 1대1 합사 경험이 있는 장쇠는 예전에 붙었던 사자보다 덩치가 작은 사룡－사설 형제에 자신감을 가진 듯했다. 장쇠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어느새 사설의 목덜미를 물었다. 사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쳤으나 장쇠는 앞발로 배를 짓누르며 `굳히기 자세'에 들어갔다. 사설의 누런 갈기털은 새빨간 피로 금세 물들었다. 순간 사룡이 장쇠의 등에 올라타 목덜미를 물기 시작했다. 장쇠는 또 다른 적의 공격을 뿌리치기 위해 사설을 놓아 주고 몸을 뒤흔들었다. 장쇠의 몸놀림에 사룡이 퉁겨나갔다. 장쇠는 이번엔 사룡을 덮쳤다. 그러나 사룡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장쇠와 사룡은 뒷발로 선 채 마구 펀치를 날렸다. 사룡은 나이는 어리지만 힘이 좋아 장쇠가 조금 밀리기 시작했다. 이미 사설을 눌러 사기가 높아진 장쇠는 자신의 장기인 스피드를 마다하고 힘으로 맞서다가 사룡의 소나기 펀치에 눈 밑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장쇠가 움찔한 순간, 사룡이 목덜미를 공략했다. 밑에 깔린 장쇠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사룡을 떼어 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로 그때 쓰러졌다가 힘을 되찾은 사설이 장쇠의 아랫배를 물고 늘어졌다. 목덜미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는 사설의 복수였다. 장쇠의 처절한 비명이 간이 방사장을 뒤흔들었다. 사육사들은 더 이상 관찰만 할 수 없었다. 패트롤카가 사룡－사설 형제를 그대로 덮쳤다. 사자 복식조의 공격은 패트롤카의 방해로 끝났지만 장쇠는 일어나지 못했다. 장쇠의 배 밖으로 시뻘건 창자가 흉하게 나와 있었다. 시험 합사에서 첫번째 사망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