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길러준 홀할머니 병원비가 더 절실
기사입력 1997년 02월 11일 18시 56분
서울 안암동 체육관엔 `낮도깨비'의 전설이 있다. 흥청거리는 토요일 오후나 달콤한 늦잠으로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일요일 오전. 선수들 대부분이 외박을 나가 적막해야 할 체육관이 한 선수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찼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그 `낮도깨비'가 자취를 감췄다. 긴 그림자의 주인공은 바로 주희정（20）. 신학기가 되면 3학년으로 진급할 그가 언제부턴가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사실 그는 주말이면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부산 동아고 시절 조우현과 고교 코트를 평정했던 그는 농구부의 몇 안되는 지방 학생이었던 것. 서울엔 피붙이 한사람 없었고 고향 부산에도 6순의 할머니 김한옥씨만이 쓸쓸히 빈집을 지키고 있어 다른 선수들이 외박을 나가는 토요일 오후부턴 홀로 숙소를 지켜야 했다. 그런 그가 지난달 중순 갑작스레 프로행을 결정했다. 할머니가 간경화로 몸져 누워 병원비가 급했다. 트레이너를 거쳤던 나래 이재호 코치의 여러차례 권유도 거절했던 그도 경제적인 압박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희정은 태어난지 몇달만에 어머니가 가정 불화로 집을 나가는 바람에 아버지도 덩달아 가출, 줄곧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할머니의 와병은 그에게도 충격이었고 당장 아쉬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선 마침 개막을 앞두고 있던 프로팀 입단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박 한 감독도 그의 딱한 사정을 알기에 순순히 자퇴원을 받아들이고 이적 동의서를 써주었다. 첫 봉급을 받는 날이 오는 25일. 훈련생으로 입단, 연봉 계약 대상이 아닌 그는 아직 반쪽짜리 프로선수지만 의 정식 사원 자격을 갖고 있어 월급을 받게 된다. 첫 월급으로 할머니의 입원비를 마련할 생각인 그는 할머니의 고집 때문에 요즘 고민이다. "할머니는 적금을 들겠대요. 제 장가갈 밑천을 마련하신다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