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일기] 서승만 (8)
기사입력 1997년 02월 11일 18시 12분
`미스터 객관식'으로 얼굴이 알려지긴 했으나 대사가 없는 것은 늘 불만이었다. 연출자인 안우정 선생님이 미웠다. 세상에 두달 동안이나 대사 한 마디 주질 않다니. 안 PD는 전생에 나와 무슨 악연이 있길래 이렇게 괴롭히나. 설마설마하며 두달을 넘긴 뒤 어느날 영등포에 있는 한 점쟁이를 찾아갔다. 언제쯤에나 대사를 줄 것같으냐고. 이런걸 물어보러 점쟁이를 찾은 사람도 아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내가 진지하게 이 문제로 고민하자 점쟁이 또한 썩 진지한 태도로 처방을 내렸는데 부적을 왼쪽 가슴에 넣고 다니라고 했다. 믿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며칠간 부적을 갖고 다녔다. 그런데 아 이게 웬일인가. 얼마후 안우정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얼굴만 내밀고 나가는 것도 이 정도면 됐어. 이젠 뭔가 한 마디 하는게 좋지 않을까. 어때 이걸 한번 해보지." 안PD는 국내 최고의 인기작가인 임기홍씨가 직접 연구한 아이디어라며 "수고랄게 뭐 있습니까?"를 하라고 했다. 두 마디도 아니고 딱 한 마디였다. 내가 처음으로 얻은 첫 대사다. 그날 밤 집에 가서 밤새 거울을 보며 연습을 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재미있게, 시청자들의 기억에 가장 잘 남을 수 있게 말을 할까. 첫 녹화를 앞둔 연습 때 안PD가 최종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합격. 눈을 하늘로 치켜 뜨고 약간 바보스런 표정을 한 채 "수고랄게 뭐 있습니까, 흐흐흐！" 첫날부터 반응은 최고였다. 이미 막간에 방청객들을 녹여 놓아 내가 표정만 지어도 박수가 터질 판이었으니 대사를 하게 되면서 방청석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