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3)
기사입력 1997년 02월 10일 16시 24분
처음 보는 적 사자를 향해 몸을 날린 호동이는 글자 그대로 비호였다. 사육사들은 호동이를 날 때부터 줄곧 지켜봤지만 그처럼 호랑이다운 모습은 처음 봤다. 호랑이 가운데 호동이를 대표로 뽑은 것도 제또래중에 가장 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자와 맞닥뜨린 호동이는 `진짜 호랑이'였다. 강철 역시 `사자'였다. 호동이 덮치자 강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맞섰다. 둘은 팽팽하게 맞섰다. 에버랜드 사파리에 있는 호랑이는 한국 호랑이가 아닌 인도지방 벵골 호랑이다. 호랑이의 원조격인 한국 호랑이와 시베리아 호랑이는 크지만 무더운 인도지방의 벵골 호랑이는 작은 편이다. 사자는 2살짜리 강철을 뽑았지만 호랑이는 3살짜리 호동이를 뽑은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같은 나이에서는 사자가 호랑이보다 커 이들이 맞설 경우 호랑이가 일방적으로 당한다. 게다가 숫사자는 특유의 갈기가 있어 머리가 커보이기 때문에 호랑이가 미리 겁에 질리는 점도 있다. 뒷발로만 딛고 선 사자와 호랑이는 앞발을 치켜들고 펀치를 마구 휘둘렀다. 사육사들도 처음 보는 `실제 상황'이었다. 사파리에서 자기들끼리 자주 싸우기는 하지만 날마다 같이 사는 정 때문인지 치명상을 입히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누가 강자인 것만 가려지면 싸움은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다르다. 패트롤카의 사육사와 수의사는 침이 바짝 말랐다. 그러나 싸움을 처음부터 말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합사하면 싸움을 피할 수 없기에 이들이 작은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갖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가 서로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나중에 합사를 하더라도 큰 싸움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한쪽이 치명상을 입을 만큼 몰리면 그때 가서 패트롤카로 밀어붙이거나 소방호스로 물을 쏘고, 돌멩이를 던져 떼어놓을 계획을 세워놓았다. 힘에 밀린 호랑이가 넘어지자 사자가 허벅다리를 물었으나 호랑이는 날쌔게 일어나 결정적인 부상을 피했다. 호랑이는 재빨리 돌아 사자의 목덜미를 노렸으나 이번에는 사자가 위기를 겨우 넘겼다. 머리가 좋은 호랑이는 몇합을 겨룬 뒤 자신이 사자보다 힘에서는 뒤지지만 스피드에서 앞선다는 점을 깨닫자 철저하게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으로 작전을 바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