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 (1)
기사입력 1997년 02월 06일 15시 32분
사육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사파리와 아파트 사이에 철창으로 둘러싸인 100평 남짓한 우리. 아파트 지붕 위에 저격병처럼 포진한 사육사들은 제각기 소방 호스와 돌머 로 무장한 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우리 안의 패트롤카에는 핸들을 잡은 사육사 옆에 마취총과 전기봉을 굳게 쥔 수의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사파리가 개장한 뒤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 사자와 호랑이가 시험 삼아 한 우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지난 91년 3월의 일이었다. 사자와 호랑이는 모두 동물의 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1대1로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호랑이는 아시아권에서 단독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역사상 이들이 정면 승부를 펼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 74년 사자 사파리로 시작한 사파리는 80년 호랑이를 사자 사파리 옆에 입주시켜 이웃 사촌이 되도록 했다. 그러나 90년에 들어서 날이 갈수록 사파리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자 동물원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야 했다. 바로 사자와 호랑이의 합사(合舍)였다. 사파리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리는 데는 최고의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위험한 것이었다. 자칫하면 사파리가 문을 닫아야만 하는 도박이었다. 사육사들은 우선 실험을 하기 위해 사자와 호랑이 가운데 나이가 어리고 가장 순한 놈을 골라 만나게 했다. 날마다 사자와 호랑이를 관찰한 사육사들은 며칠 동안 회의를 한 끝에 사자 중에서는 2살짜리 `강철'을, 호랑이 중에서는 3살짜리 `호동'을 첫 번째 합사 파트너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어리고 순한 놈이라고 해도 강철은 사자요, 호동은 호랑이었다. 만약 정면 승부를 펼친다면 누군가는 쓰러질 게 분명했다. 사육사들이 바짝 긴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윽고 아파트의 문이 열리고 사자와 호랑이가 걸어 들어왔다. 100평짜리 철창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조금 큰 투견장이나 다름 없었다. 뜻밖의 적을 마주친 사자와 호랑이는 순간적으로 긴장하는 듯했다. 한동안 멈칫했던 이들은 본능적으로 기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준비 운동처럼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둘은 천천히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