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오순도순 정을 엮는 짚신마을
기사입력 1997년 02월 06일 15시 31분
`짚신 마을?' 아직도 짚신을 신는 사람이 있을까. 바로 짚신마을에 가면 이같은 의문이 한 순간에 풀린다. 경남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에 자리잡은 난정마을은 그 마을 이름보다 짚신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면사무소:0595－83－9134) 지리산 청학동에서 흘러내리는 황천강이 하류에서 섬진강과 한몸을 이루는 곳. 얕은 산등성이를 끼고 배밭으로 둘러싸인 이 조그마한 마을은 시골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있는 한가롭고 조용한 바로 그것이다. 현재 하동군의 10여개 마을에서 생산되는 짚신은 전국 생산량의 50%를 넘을 정도. 난정마을은 22가구, 60명이 사는 작은 마을. 공기 좋고 물맑고 인심좋은 이 마을에 자랑할 것이 또 있다면 마을 어디서나 이리저리 나뒹구는 짚이다. 그런 짚을 내버려두지 않고 이를 이용해 새로운 `공예품'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짚신이 소비되는 곳은 장례를 지내는 상가나 무속촌 및 민속촌, 그리고 습진이나 무좀 등으로 고생하는 개인들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조상들의 짚신 만드는 지혜를 그대로 터득하고 있다. 짚신을 만들기전 손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물을 적셔 절구로 짚을 다듬는 것이나, 신틀을 이용해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것이나…. 그런 짚은 짚신이라는 공예품으로 완성될 때 그 빛을 발한다. 장덕님씨(57．여)는 "짚신은 조상들의 멋과 지혜가 합쳐진 빛나는 공예품"이라면서 "15년동안 짚신만 만들어서 이젠 짚신 도사가 됐다"며 자랑했다. 장씨가 하루에 만드는 짚신은 20켤레.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상인들에게 판매되는 가격은 10켤레당 1만원. 하루 2만원의 부수입을 올린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꼬박 하루 시간을 내야 가능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이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수입은 고정적이지 않다고 덧붙인다. 이 마을에서 짚신은 부업이나 조상의 멋과 지혜를 이어가는 매개체일 뿐 아니라 마을사람들간의 정을 엮어 나가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짚신을 혼자 만들기보다는 마을 사람들끼리 돌아가며 자기집의 사랑방을 내주는 것. 특히 박계순씨(62．여)와 김두례씨(58．여)집은 마을 사람들의 단골 짚신 생산공장(?)이다. 이렇게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가 되기도 한다. 하순례씨(75．여)는 상인이 올때가 가장 즐겁다. 상인으로부터 돈을 받아든 하 할머니는 "이 돈으로 고기도 사먹고 손자들 용돈도 주고 시장에도 갈 것"이라며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는 특별한 용도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아 일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짚신. 하지만 조상들의 멋과 낭만이 깃든 뛰어난 공예품이며 실용품이기도 했던 짚신의 역사는 순박한 산골마을 사람들의 애틋한 노력으로 당분간 계속 이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