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이야기] 거미(4)
기사입력 1997년 02월 03일 15시 21분
부지런히 얘기했지만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조금도 불쾌하진 않았다. 처음부터 잘 들으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핵심 감정은 의존심이지,
죽음과 삶, 영혼에 대한 궁금증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불안을 가라앉히고 편안해질 수 있는 약을 권했더니 반색을 하며 요구한다.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곁에 없을 때 대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대리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편안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의 본능을 스스로 포기하게끔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편안한 자기의 삶이 너무 좋아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듯이 자기 삶의 연장에만 관심을 둔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자식을 통한 생명의 연장도,
자식들이 살아가야 하는 환경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도 관심이 없다. 자식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삶을 위해 이혼을 하고, 환경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돈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킨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의 생명력은 약화돼 결국에는 종말로 치닫게 될 것이다. 아직 영생을 살 수 있는 삶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현대자본주의는 사람들을 너무 약하게 만들고 있다. 거미같이 하등 생명체로 내려갈수록 자연계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그야말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사람들은 발달된 과학문명 덕택에 굳이 그렇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대충 살아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적응력은 약해지고 그녀는 생명체로서 기본적으로 짊어져야 할 본능적인 과제마저도 부담스럽게 여기고 피하려고만 한다.
어른으로 성장하고 독립하기를 두려워 하는 환자나, 자식을 낳고도 조그마한 갈등을 견디지 못해 걸핏하면 이혼하는 부부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이같은 종말론적인 현상이 극에 달하면 영혼의 진실이 내려와야 할 때인 것 같다. 더 이상 내버려 두었다가는 인간들 스스로가 이 세계를 파괴하고 말테니 말이다.
한번 죽는 인생인데 멋지게 죽어보자고 핵폭탄을 터뜨리려 하는, 영화 `브로큰 애로우'의 존 트래볼타 같은 미치광이들은 세기말에는 무수히 많아질 것이다.
세기 말에 영혼의 진실이 어떻게 내려와 생명과 세상을 구원할 지 참 궁금하다. 성서의 예언대로 아마게돈 전쟁이 일어난 후 새하늘 새땅이 열릴 지,
아니면 기적을 행사하며 영혼의 세계를 믿게 하는 또 다른 성인이 나타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