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워커] 제2 그랜트 힐 떴다.
기사입력 1997년 02월 02일 16시 39분
역시 （）급이라던 소문 그대로였다. 눈을 어지럽히는 현란한 드리블링. 준족으로 국내무대에서 내로라하던 팀 동료 오성식도 차마 쫓아오지 못하는 스피드.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상대방의 마크를 눈속임（아이페이크） 한차례로 따돌리며 가슴에 안겨주는 패싱. 그리고 수비수들의 빈틈을 파고들다 돌고래처럼 솟아오르며 쑤셔넣는 덩크슛. SBS 스타즈의 포인트 가드 제럴드 워커（24）의 기량은 듣던대로 압권이었다. 지난해 11월 미국 에서 벌어졌던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의 그랜드 힐을 뺨치는 선수가 테스트에 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1m84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신장에 가냘퍼 보이는 몸매. 요즘 국내 선수들도 웬만하면 1m90을 넘기는 것이 보통이고 보면 이미 5∼6월에 알짜배기들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벌인 드래프트서 그만한 선수가 무적（無籍）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게 일반론이었다. 물론 용병 테스트에서 걸출한 기량을 발휘했지만 정작 2번 지명권을 쥔 SBS가 다른 가능성있는 센터들이나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제쳐두고 워커를 선택했을 때 대다수 농구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이런 생각들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게 1일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벌어진 한국프로농구 개막전서 판명됐다. 워커는 대우전에서 인터셉트 2개와 리바운드 4개가 모자라 한국농구 사상 유례가 없는 `쿼더러플 더블'을 놓쳤다. 22득점 10어시스트 8스틸 6리바운드. 지난 95∼96농구대잔치서 트리플 더블을 2차례나 기록하며 국내 포인트 가드로 최고라는 명성을 듣던 （상무）도 인터셉트를 1경기서 8개 이상 빼낸 경우가 더물다. 드리블러의 감각을 읽고 한번 손동작에 따내거나 상대의 패스 진로를 읽고 중간에서 가로채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대학（샌프란시스코대）시절 서부지역대학（WCC） 3년 연속 인터셉트왕에 오를 만큼 그의 인터셉트 감각은 동물적이다. 다른 대부분의 용병처럼 워커의 희망은 한국에서 재능을 인정받는 것. 하지만 그의 드리블 감각을 따라잡는 국내 선수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떠날 각오가 돼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