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천원전] ○이성재4단 ●권효진초단
기사입력 1997년 02월 02일 15시 58분
제1보(1∼15)＝2차예선이 벌어지던 1월 14일 한국기원 대회장 한 구석에서 연기되었던 1차예선 결승국 한판이 조용히 두어지고 있었는데 바로 이 대국이다.
사실 이 판은 처음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승부가 어느 정도 예견되었으니까. 그러나 수가 거듭될수록 `흑이 판이 좋다'는 관전자들의 입담이 오가더니 급기야 `흑이 이기겠는데'라는
소문(?)이 퍼졌고 그제서야 이 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집중되었다.
프로 초년생이나 다를 바없는 권 초단이, 최근 9단을 연거푸 두번이나 꺾고 대왕전 도전자로 나선 이 4단을 이긴다고는 객관적인 실력 면에서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서는 항상 객관적인 성적과 실력으로만 승부가 가름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상대에 앞선 전력을 갖고 있다해도 상대는 `한칼'을 갖고 있는 프로다. 조금의 방심과 자만심의
허라도 보이면 여지가 없다. 어쨌든 1차예선가운데 가장 큰 파란으로 일컬어졌던 이 판을 감상해보라.
초반 포석이 이색적이다. 흑 7에 손뺀 것과 백 10에 손뺀 것이 그것. 마치 흉내바둑을 두는 듯한데 별 의미는 없고 이렇게 손뺀 다음 3．3 지킴이냐 협공이냐를 국면의 추이로 선택하려는 융통성이다.
백 12 협공에 흑은 13에 되돌아 왔는데 백 14로 `가'로 제압하면 어떻게 둘 예정이었냐고 묻자 권 초단은 즉시 수순을 제시했다. 12까지 귀를 파고 백 13 지킴이 불가피할 때 흑 14로 뛰면
충분히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당차면서도 자신감이 엿보이는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