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강화도의 칼바람 (15)

기사입력 1997년 02월 02일 15시 58분


두천의 말은 몽골말로 하루에 삼백리를 달리는 준마이다. 채찍을 받은 말은 네굽을 모으고 해안길을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석양 무렵이었다. 바다끝에 걸린 거대한 태양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다시 채찍을 내려쳐 해안가의 야산 모퉁이를 돌았을때 앞쪽에 돌로 쌓은 석책이 나타났다. 몽골군의 침략에 대비한 보루였지만 지금은 비어진 곳이다. 고삐를 잡아당긴 두천은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든 잡풀만 무성한 곳이었고 앞쪽은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여기야."

석축 안에서 불쑥 솟아 오른것은 남장차림의 여인이다. 긴 머리를 말꼬리처럼 뒤로 묶었고 쇠가죽 조끼에 바지를 입은 여자는 얼굴이 흰 미인이었다.

"왜 이렇게 늦어?"

여자가 눈썹을 치켜 세웠다. 그녀는 김준의 애첩 종민이다.

"순시에 시간이 걸렸어."

말에서 뛰어내린 두천이 날렵하게 석축을 넘었다. 석축 안쪽에는 이미 돗자리가 깔려져 있는데다 술병과 마른 안주를 담은 찬합까지 준비되어 있다.

"순시는 무슨. 몽골병도 없는데."

종민이 사기잔에 술을 따라 그에게로 내밀었다. 쌀을 빚어 만든 청주였으니 일반인들은 구경도 못할 귀물이다. 단숨에 술을 삼킨 두천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좋군. 미인과 바닷가에서 술을 나누는 맛이."

"시간이 적어서 탈이지."

옆으로 다가 앉은 종민의 손이 두천의 허벅지를 쓸어 올렸다.

"그동안 과부를 몇명이나 울렸누?"

"처녀도 수두룩한데 과부는 왠."

술잔을 던진 두천이 종민의 바지를 벗겼다. 곧 희고 풍만한 하체가 드러났지만 종민은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날 죽여줘."

이제는 종민이 두천의 바지를 잡아 뜯듯이 벗겼다. 종민은 본래 중랑장 박용의 첩이었는데 박용이 병사하자 김준이 첩으로 들여앉힌 여자였다. 미모가 뛰어난데다 색기도 요란해서 여러사람이 탐을 내었으나
고려 제일의 실력자 김준의 말 한마디에 결말이 났다. 그러나 애당초 한 남자로 만족할 종민이 아니다. 박용의 첩이었을 때부터 그녀는 두천과 밀회를 즐겨왔던 것이다.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두워 졌을때까지
두 남녀는 거리낌없는 정사를 치렀다. 두천이 옆으로 굴러 내려가자 종민은 여운을 즐기려는 듯 반듯이 누워있었다.

"김준이 위사를 늘렸다면서?"

종민의 아랫도리에 옷가지를 덮어 주면서 두천이 물었다.

"내 부하 대정 한놈도 데려갔다."

"위사 뿐인줄 알아? 첩도 하나 늘렸다. 개경에서 흘러 들어온 년이야."

종민이 아랫도리를 덮은 옷가지를 발로 차 던졌다.

"구실도 제대로 못하면서 계집수만 늘린다."

"내실 위사는 몇명이나 돼?"

"왜? 김준을 죽이고 날 데려가려고?"

"그러면 안되나? 김준도 최의를 죽이고 첩을 데려왔지 않아?"

종민이 팔을 뻗어 두천의 아랫배를 쓸었다.

"내실위사는 오십명 정도야. 이번에 십여명을 늘렸어."

"…."

"아마 왕궁보다 더 경비가 삼엄할거야. 어지간한 군대로는 안돼. 이 색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