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 동물공화국] 한지붕두가족 (13)
기사입력 1997년 01월 31일 17시 43분
빠삐용은 사육사들의 패트롤카가 닿을 수 없는 구석진 단풍나무 그늘 아래서 모처럼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아파트에 연금 당한 뚝심이 부러울 만큼 찜통 같은 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 91년 7월 중순이었다. 아무리 사자의 본래 고향이 초원이라도 삼복 더위에 꼼짝하기 싫은 것은 정한 이치였다. 게다가 두툼한 겨울 코트 같은 갈기 털이 짜증스럽기만 하고 무거운 털옷도 거추장스러워 꼬리 끝조차 움직이기 싫은 무더위였다. 사파리 입구에 더 좋은 나무 그늘이 있지만 그곳은 사육사들이 관광객을 위해 패트롤카로 낮잠을 방해하는 곳이어서 도저히 마음 편히 잘 수도 없다. 요즘 같은 더위라면 호시탐탐 왕권을 노리는 용팔이보다도 귀찮게 하는 사육사들이 더 무서웠다. 게다가 눈치를 보니 용팔이 일당도 전쟁을 일으키기 싫은 게 분명해 모처럼 긴장을 풀고 낮잠을 즐기는 터였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빠삐용은 꿈결 저편에서 사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무쇠 뚜껑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고 보니 백골파 털보파 해골파 식구들이 뒤엉켜 싸움을 하는게 아닌가. 빠삐용은 불에 덴 듯이 놀라 뛰쳐나갔다. 한가지 알 수 없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려면 낮잠 자는 자신을 공격했을 텐데 이상하게 졸개들끼리 치고받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었다. 달려가 보니 싸움의 원인은 코끼리 배설물이었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규명이 되지는 않았지만 코끼리 배설물에는 사자를 흥분시키는 묘한 성분이 있기 때문에 사자들은 냄새만 맡아도 서로 먹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게 마련이다. 마치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어찌보면 사자는 본능적으로 코끼리 배설물에 중독된 존재인 셈이었다. 사자의 이같은 심리를 잘 아는 사육사들이 사파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배설물 몇덩이를 던져놓은 것이다. 1년전 당시 왕이었던 알렉산더가 먹는 것을 보며 침만 삼켰지만 이제는 코끼리 배설물을 처음 맛볼 자격을 난생 처음 갖춘 셈이다. 빠삐용도 집단 난투극에 뛰어들었다. 사파리를 완전히 평정한 왕이라면 헛기침 몇번만 해도 다른 사자들이 모두 물러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겠지만 불행스럽게도 만만치 않은 정적 용팔이 때문에 체면을 차릴 형편이 못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