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

[대영웅] 강화도의 칼바람(12)

기사입력 1997년 01월 30일 14시 36분

김준이 정청에 들어서자 장군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교정도감에 소속된 장군들이다. 상장군및 대장군으로 구성된 그들은 무신정권 수립 이후로 고려국을 통치하는 명실상부한 실력자들이었다.

상좌에 김준이 앉는것을 기다려 그들은 좌우로 벌려 앉았다. 모두 눈부신 관복차림이었으나 허리에 찬 검은 도방 입구의 위사(衛士)에게 보관시켜야 입장이 된다.

스무칸 정청의 상좌에 앉은 김준이 별러앉은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한단 높은 그의 자리에서는 그들이 모두 내려다 보인다.

"몽고에서 우리 사신을 후하게 접대한 모양이야. 광평공과 대장군 김방경이 쿠빌라이 한테서 선물도 하사 받았다고 들었다."

김준의 목소리가 정청을 울렸다.

"고려국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다."

광평공 왕순과 김장군 김방경이 몽고로 떠난것은 정월 을미일이다. 그들은 원종이 작년에 몽고에서 환대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전하려고 보내진 것인데 공물을 가져간 것은 물론이다.

임연(林衍)이 머리를 들었다. 그는 추밀원 부사겸 대장군이었다.

"대감. 왕께서 김방경을 보낸것은 교정도감 내에서도 친몽세력을 늘리려는 뜻이시오. 김방경이 쿠빌라이로부터 술잔을 받고 어떤 몰골이었을지 뻔하외다."

그가 주위의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왕과 황제한테서까지 인정을 받는다면 누가 목숨을 걸지 않겠소이까?"

쓴웃음을 지은 김준이 보료에 등을 기댔다. 임연은 대장군 송언상의 말부리는 군사였다가 공을 세워 대정(隊正)이 되었고 김준에 의해 출신한 인물이다. 그는 사석에서 김준을 아비로 불렀는데 최이를 죽이는데도 큰 몫을 했다.

"김방경은 온후한 인물이다. 속단하지 말라."

"그런자가 내색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 거외다."

"이러다간 앞으로 장군들이 사신으로 떠나려고 들지 않겠다."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지자 대장군 최휘가 입을 열었다.

"왜구가 김해땅에 쳐들어와 양민 십여명을 잡아갔습니다. 요즘들어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졌습니다."

"우별초 낭장 지준을 곧 김해로 보낼 작정이야. 남해안의 각 별초군을 강화시키고, 돌아오라고 했다."

김준의 말은 곧 법이다. 정청에 모인 장군들은 모두 그의 심복이었으니 반론이란 있을수가 없다. 그가 말을 이었다.

"탈무아가 내일 몽고로 돌아간다. 왕께서 불상사를 염려하시는 터이니 각도의 별초군에 파발을 보내라. 저고여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고종 12년. 몽고의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가에서 피살됨으로써 몽고와의 국교가 단절되었고 7년후에 몽고의 침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35년전의 일이다. 김준이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남송을 믿었지만 그쪽은 내분으로 곧 몽고에 멸망당할 것이다. 대륙에서 남아있는 왕조는 고려국 하나뿐이될 것이야."

"……."

"국왕폐하의 친몽이 곧 왕조와 백성을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럼 변발을 하고 몽고옷을 입은 왕을 모시란 말씀이외까?"

임연이 다시 나섰지만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