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이야기] 거미(1)
기사입력 1997년 01월 30일 14시 24분
중학교때 친구들과 얘기하다 죽음을 소재로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죽으면 다 끝이야. 성공도 실패도 대학가는 것도 행복도 말짱 다 헛거지."
그 말을 들으면서 웃기는 했으나 내심으로는 의아했었다. "죽으면 정말 모든 게 끝일까?" 그때 기억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가끔 생각이 난다.
한해에 100명이 넘는다는 청소년 자살을 보면 그들은 어쩌면 성인보다 죽음에 더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은 어른 보다는 자기가 태어난 죽음에 더 가깝기 때문에 쉽게 죽음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보면 이를 더 쉽게 알 수 있다.
5세 정도의 어린이들은 죽음을 자기 곁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해 그 사람의 존재가 끝난 것이 아니라 멀리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영화들을 보면 아버지가 죽었을 때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먼데로 여행을 갔다고 설명하면, 어린이들은 아무런 저항감없이 받아들이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는 죽음을 점점 멀리한다. 5∼10세의 어린이들은 죽음을 의인화해 어떤 무서운 사람이 데려간 것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죽는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는 어린이들은 그다지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모두들 슬퍼할 때 열살난 내 아들은 `나이가 들면 다 죽는 거야'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죽음을 자연스럽고 또 가깝게 느끼는 것은 우리 생명이 죽음에서 탄생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삶을 위해 매진해야 하는 성인이 되는 시점에서는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나름대로 잘 정립한다는 것은 긴요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발목잡혀 스스로 인생을 공전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심한 불안을 호소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천지가 왜 창조되었는지 모르겠어요. 하느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다면 인간은 결국 하느님 뜻대로 살게 돼 있는 거 아니에요? 운명이 있는 거라면 내가 지금 노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산다는 게 다 덧없고 무의미해요. 하지만 죽을 수도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