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말같지 않은 말이 판치는 말많은 곳
기사입력 1997년 01월 14일 14시 46분
"대끼리가 빠지고 가꾸시가 쏴먹었다." 경마장에 국적불명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끼리'는 우승예상마를 뜻하는 속어이고 `가꾸시'란 남몰래 전력을 키워놓은 비장의 무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강력한 우승후보마가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의외의 말이 우승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일반인들이 들으면 생소하기 그지 없는 말이지만 경마장에서는 오히려 `알아듣지 못하면 바보'로 취급될 정도다. `뽀찌꾼'이란 말도 있다. 돈많은 사람에게 빌붙어 우승예상마를 찍어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이란 뜻인 이 말은 팁이나 노름판의 개평을 뜻하는 일본 속어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개평꾼이란 우리말을 제치고 경마장의 표준어로 정착돼 있다. 이밖에도 복병마란 뜻의 `아나', 베팅할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는 사람이란 뜻의 `꽁지', 사설경마를 의미하는 `맞대기', 경주로의 마지막 코너인 4코너란 뜻의 `용코너'란 말도 경마팬들이 몰라서는 안되는 속어들이다. 이처럼 노름판에서나 사용될 법한 속어들이 경마장의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경마용어들이 일제시대 이후 별다른 순화과정을 거치지 않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마사회에서 공식용어로 사용되는 말도 대부분 일제시대에 사용하던 단어들을 지금까지 아무런 순화작업 없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들이다. 마사회는 훈련이란 말 대신 `조교'란 일본식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심의나 심판이란 말 대신 `재결'을, 출전 대신 `출주', 씨암말 대신 `종빈마', 마권 대신 `승마투표권', 질주습성 대신 `각질', 수말 대신 `모마（牡馬）, 순위변경 대신 `강착'이란 말을 공식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주에 처음 경마장에 나왔다는 조규만씨（30．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는 "경마장 용어들이 생소해 사람들이 숙덕거리는 말은 물론, 마사회 공식용어들도 알아듣기 힘들었다"면서 "경마가 일반인들의 호응을 얻으려면 국어순화운동부터 펼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