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스타일기] 정흥채 (13)
기사입력 1997년 01월 14일 14시 17분
연극배우 시절 나는 틈만나면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
산은 내 마음의 고향인데다 혼자서 연습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면 생기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나는 주로 한밤중을 택했다. 무섭기는 하지만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밤이 좋았던 것이다. 거기다 밤이 되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부엉이 체질'이라 여러모로 밤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정상에 올라가서 발성연습도 하고, 대사도 읊어보고, 춤도 추고, 무술로 몸도 풀어보고, 완전히 `달밤의 체조'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발성연습. 어려서부터 동물흉내를 잘 냈는데 그때도 소울음부터 시작해 고양이와 닭울음, 염소, 늑대 소리를 발성연습 삼아 고래고래 질러댔다.
고요한 한밤중,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에서 혼자 이렇게 하다보면 완전히 몰입돼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은 낮에 시간이 나서 역시 산에 올라가서 신나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무언가 하고 보니 장정 2명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쪽도 경계의 자세를 풀지 않은채 "당신 여기서 뭐하고 있는냐"고 물어왔다.
무언가 오해가 있다싶어 나는 내가 연극배우라는 사실부터 시작해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알고보니 그들은 산밑에 있는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로 공부를 하다 시끄러워 도대체 무슨일인가 싶어 올라왔다는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니 가물가물 하얀 건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고시원이라는 것이다.
내가 목청이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 목소리가 약 1.5㎞를 달려가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였으니 참 나도 대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