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마침내 쿠데타 시간은 잡히는데
기사입력 1997년 01월 12일 15시 02분
아침이 되자 사자들은 모두 아파트에서 나와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사파리의 모습이었다. 알렉산더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오줌을 싸는 것으로 사파리가 자기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따르는 백골파 무리는 보스의 행동을 지켜보며 아침운동을 했다. 한쪽 구석에서는 털보파와 해골파 식구들이 조금은 주눅이 든 표정으로 늦은 기지개를 켜는가 하면 백골파의 눈치를 보며 운동을 하기도 했다. "형님, 결정은 했죠?" 전날 저녁 쿠데타를 제의한 해골파 용팔이가 확인이라도 하듯 물었다. 이미 결심을 한 털보파 두목 빠삐용은 남의 시선을 의식이라도 한 듯 고개만 끄덕이고 다른 곳으로 발을 돌렸다. 조금 뒤 털보파 행동대장 쌍털이 용팔이에게 다가와 쿠데타 시기를 통보해왔다. 식사 시간이었다. 사파리의 식사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단 한번 뿐이다. 봄 여름에는 한낮이고, 날이 추워지면 해질 무렵인 오후 5시30분쯤이다. 식사시간은 가장 정신이 없는 시간이다. 사육사들이 고기를 사파리 곳곳에 던져주기 때문이다. 먹이를 한곳에 모아두면 힘센 사자의 눈치를 보느라 약한 사자들이 굶을 수도 있고, 가끔씩 일어나는 먹이를 둘러싼 싸움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었다. 먹이는 주로 내장을 뺀 생닭이지만 백골파 보스 알렉산더의 비서실장 뚝심이처럼 몸이 아파 식욕을 잃은 사자에게는 특별히 쇠고기를 주기도 한다. 사자들이 먹이를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식사시간이야말로 H－아워로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세력이 엇비슷한 상태에서 펼치는 전면전이 아니라 기습작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털보파와 해골파 입장에서는 12마리의 백골파 조직원이 분산된 상태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해야 했다. 3개파 보스 가운데 가장 머리가 나쁜 빠삐용이지만 쿠데타에 한번 실패한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다. 쿠데타 시기에 합의한 빠삐용과 용팔이는 입안의 침이 자꾸 마르는 것을 느끼며 식사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용팔이가 해골파 행동대장이자 동생인 용식이를 비롯해 조직원들에게 쿠데타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 사파리 한쪽 구석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략가 뚝심이가 용팔이 몰래 빠삐용 앞에 나타난 것이다. 지난 봄 쿠데타 진압 때 빠삐용에게 물려 다친 발을 절룩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