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일기] 정홍채 (10)
기사입력 1997년 01월 11일 14시 08분
별 희망없는 타향살이를 하다 나는 소집영장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 방위복무를 했다. 천하의 임꺽정이 방위출신이라면 못믿는 사람이 많겠지만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덩치만 보면 현역도 가장 힘든 병과를 받아야 마땅했지만 그때만해도 인원이 남아 고졸 학력은 방위로 판정받았기 때문이다. 가방끈이 짧은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솔직히 `시간아 빨리가라'만을 되뇌다 소집해제가 되자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고향에 있다보니 술만 마시게 되고 방황만 깊어지는 것 같아 이왕 결심한 연기의 길을 위해 다시 상경한 것이다. 그때가 87년 여름. 영화계로 돌아갈까 하다가 기초부터 연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극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연극쪽이 기초를 다지는데 도움이 될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학로에 있는 극단을 쭉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파악해보니 극단 전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사무실에 책이 사방으로 쫙 꽂혀있는게 눈길을 끌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나는 공부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길로 입단을 결심하고 부탁을 했더니 극단은 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때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연기자의 길에 마침내 정식으로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나는 허드렛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했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극단 전원(全員)은 이름그대로 모든 단원이 하나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곳이라 분위기가 인간적이었고 나는 동료들과 쉽게 친해졌다. 지금도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전원'에서 연기정신을 배웠다는 것이다. 당시 선배들은 3가지를 나에게 주문했다. 첫째 `배우 이전에 사람에 돼라', 둘째 `무대 무서운 줄 알아라', 셋째 `정열을 가져라'. 나는 이 세가지를 지금껏 연기생활의 지침으로 간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