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이야기] 백두산에서 만난 영혼(1)
기사입력 1997년 01월 09일 14시 32분
작년 가을 백두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같이 간 최옥순 보살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 "난 이번 여행에서 많은 영들이 따라온 것 등 신비한 것들을 참 많이 봤다. 같이 간 사람들이 한순간만이라도 내가 본 것을 봤으면 좋겠다…." 천지로 가기 전날 최보살님은 한지 한장을 주며 기원하고 싶은 사람 세명의 이름을 108번 써달라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 이름을 쓰면 될 것이라며 자기네들은 이미 오기전에 기원하고픈 사람 이름을 삼천번씩 써서 갖고왔다고 했다. 나는 돌아가신 분 이름을 써도 되느냐고 했더니 `물론'이라고 했다. 그날밤 나는 세명의 이름을 108번씩 썼다. 한분은 얼마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이었고, 두명은 내 평생에 가장 커다란 죄책감으로 따라다니고 있는 유산한 두 아이였다. 다음날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 청정한 기운을 마음껏 호흡한 후 내려와, 올라오다가 봐둔 소천지라는 곳에 제사상을 차렸다. 천지에는 공안요원들의 감시가 심해 같이 간 스님은 백팔배를, 무속인은 기도를, 나는 하늘위의 바다를 감동스럽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천제를 올리기 위해 최보살님은 많은 음식물을 준비해간 터였다. 그 음식물은 내내 커다란 짐이었지만 정성을 가다듬는 그분의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중국 시내 장터에서 커다란 소고기 덩이를 2만원에 사들고 우리는 소천지에 제사상을 차렸다. 소천지 한쪽에는 영화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제사상, 동상들이 있었고 못 건너편에는 선녀상들이 있었다. 어둠이 어스름하게 깔리는 가운데 우리는 부지런히 음식물을 올려놓고 술을 따르고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리고 사진을 찍고 절을 했다. 그런데 제사상 위쪽의 바위 위로 자꾸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앉아있는 것만 같았는데, 바라보면 어두운 바위와 수풀만이 거기 있었다. 최보살님께 신이 내리면서 분위기는 더욱 깊어졌다. 최보살님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공수를 주었는데, 나에게는 백두산 폭포를 향해 열두번 절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분께 두 아이를 지운 것에 대해 얘기를 한 터라 더 심한 벌이 내릴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가벼워 오히려 의외였다. 절을 마치고 제사가 끝나 제사상을 거두는데 내입에서 나도 모르게 `아앗！'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제사상 위 바위 위에서 아버지와 두 아이의 영혼을 보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