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 동물공화국] 섹스,쿠데타 그리고 배신(4)
기사입력 1997년 01월 09일 14시 22분
용팔이의 또다른 강점은 힘 못지 않게 영리하고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장사인 빠삐용보다 힘은 뒤지지만 두뇌 회전이 빨라 종합적인 전투력을 모두 합치면 오히려 빠삐용을 능가할 것으로 보였다. 용팔이는 또 제 나이 또래의 젊은 사자들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갖춰 차기 왕권을 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더를 위협하는 것은 빠삐용보다는 용팔이었다. 더구나 빠삐용은 이미 지난 봄 쿠데타에 실패한 약점이 있어 사파리 안에서 꼬리를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알렉산더가 이끄는 백골파가 발정기를 맞은 암사자들과 섹스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빠삐용에게 용팔이가 다가갔다. "형님, 뭐하고 계십니까?" 빠삐용은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헛기침을 하며 대꾸를 피했다. 더구나 용팔이는 며칠전 식사시간에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를 놓고 가볍게 몸싸움을 했던 껄끄러운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던 터였다. 쿠데타에 실패하는 망신만 당하지 않았던들 혼쭐을 단단히 내줬겠지만 한번 사그러든 투지 때문에 참아야만 했다. 게다가 용팔이가 다른 사자와 싸우는 솜씨를 본 빠삐용으로서는 쉽게 맞대결을 할 용기도 없었다. 만약 용팔이에게도 진다면 현재의 2인자 자리도 빼앗기고 자신이 이끄는 털보파도 와해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빠삐용은 정치생명을 건 모험보다는 될 수 있으면 싸움을 피하고 2인자에 있으며 재기의 날을 기다리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빠삐용의 전략이야 어찌됐든 용팔이의 도전을 빠삐용이 사실상 피한 모양이 됐다. 이 사건 이후 용팔이는 사파리에서 더욱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거들먹거리고 다녔다. "이제 빠삐용은 내 상대가 아니다." "사파리의 2인자는 바로 나다." 용팔이는 사파리에서 만나는 사자에게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빠삐용도 어제 털보파 똘마니가 분개한 표정으로 이같은 내용을 보고하는 것을 직접 듣기도 했다. 빠삐용은 보고를 듣는 순간에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흥분했지만 곧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당한 망신이었다. 그런 용팔이가 갑자기 나이 대접을 해주며 공손히 다가온 것은 무슨 이유일까. 빠삐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팔이의 속셈을 알 수 없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 골몰히 생각하는 빠삐용에게 용팔이는 또다시 다가갔다. "형님, 우리 힘을 합쳐 백골파를 쳐부숩시다." 용팔이는 빠삐용의 털보파와 자신의 해골파가 힘을 모아 알렉산더의 백골파 정권을 무너뜨리자는 충격적인 제의를 하는 게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