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성억압사회는 비민주화 한다.
기사입력 1997년 01월 08일 15시 09분
`오르가슴은 심리적 건강의 토대다.' `쾌락에 대한 두려움은 을 불러일으킨다.' 빌헬름 라이히(1897∼1957). 패륜의 성(性)연구가로 비난받은 생물학자. 프로이트로부터 "오르가슴에서 노이로제의 처방을 찾으려한다"고 조롱당한 정신분석학자. 음란한 연구와 실험을 한 혐의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의사. 성혁명을 부르짖어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했던 라이히의 저작중 일부가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성'(솔출판사)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됐다. 그의 가설은 아직도 성에 대해 수준낮은 논의만 오가는 한국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성적만족을 얻지 못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에서 일부일처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건강한 성을 위해서는 때로 섹스 파트너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편다. 성은 억압당할수록 욕망이 커져 성도착적인 충동을 일으킨다. 이를 방지하려면 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버리고 `오르가즘의 능력'을 찾아야 한다는 것. 또 강제결혼과 가정은 성을 억압한다. 가부장적인 가정이 발전하면 강제적 성윤리 규범이 정착되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은 철저히 억압당하게 된다. 성을 찬양하는 사회에는 성도착증과 노이로제가 없다. 노이로제란 성생활이 방해당하기 때문에 생기는 질병인 탓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은 무엇인가. "성적 억압은 심리적으로는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사회적으로는 비민주주의적 노예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사회는 "정치경제적 해방 뿐만 아니라 성적, 심리적 해방을 통한 노동 민주주의적 사회"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펴게 된데는 내력이 있다. 라이히가 소년이었을 때, 어머니는 어느날 가정교사와 사랑을 나누다 아들에게 발각된다. 라이히가 식탁에서 비밀을 털어놓자 어머니는 수치심으로 음독자살하고 충격을 받은 아버지 역시 몇년 후 병사한다. 라이히가 쾌락, 욕정 따위가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갖게 된데는 이런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