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스타일기] 정흥채 (6)
기사입력 1997년 01월 07일 14시 10분
내 고향 영암은 산으로 둘러 싸이고 마을을 가로 질러 시내가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산에서 노루가 뛰어다니고 가끔씩 멧돼지가 집으로 뛰어들어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곤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농사를 지었던 우리 집은 마을에서는 비교적 잘사는 편이었다. 7남매가 큰고생 없이 자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린시절 나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아이였다. 혼자서 방에 틀어박혀 책읽기를 좋아해 그때 벌써 `좁은문'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책을 읽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는 못했지만 조용한 방에서 책장을 넘기는 그 아늑한 분위기에 심취했던 것이다. 그밖에 새도 기르고 나비도 잡아다 방에서 키워보는 등 `나만의 세계'를 소중하게 가꿨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굉장히 조용하고 숫기 없는 아이인 줄 오해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이런 감수성 많은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내면의 모습이었고 겉으로 나는 못말리는 말썽꾸러기였다. 어린시절 나는 한마디로 `대자연의 아들'이었다. 타고난 덩치로 골목대장 노릇을 했던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수박 참외 서리를 필두로 온갖 장난이란 장난은 다 치고 돌아다녔다. 산 속 나무 위에 집을 지어놓고 며칠을 살기도 했는가 하면 장군놀이, 타잔놀이로 사방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게 하루 일과였다. 한번은 대보름 무렵 감자를 캐서 쥐불놀이하던 깡통에 넣고 구워먹으려고 신나게 돌렸는데 갑자기 끈이 끊어졌다. 어디로 갔나 하고 한참을 둘러보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서 추적해보니 지붕 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게 아닌가. 당시만 해도 초가집이 많은 때라 나는 남의 초가집 한 채를 몽땅 태워버리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