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순 마이웨이]
기사입력 1996년 10월 04일 17시 38분
## “살아야한다”정신력으로 버텨 서니 박(Sunny Park). 2년여간의 낯선 미국 생활 동안 든든한 힘이 돼주었던 밀워키의 레이 부사장이 붙여준 나의 미국 이름이다. 미국 야구에 진출한 최초의 동양인으로서 햇빛처럼 빛나 진정한 메이저리거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지금은 엔젤스의 극동담당 사장인 레이는 아직도 1년에 한두번 우리나라를 방문해 찾는다. 서니란 이름과는 달리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2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밀워키의 싱글 A팀인 스탁튼 포츠에 소속돼 등판한 첫 게임에서 1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3안타 2실점으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국무대 첫등판서 솔로포함 2실점 망신 첫 무대에서 무참히 두들겨 맞자 미국 야구는 내가 넘기 힘든 벽으로 다가왔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훈련도 하기 싫었다. 외로움과 향수까지 겹쳐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때 나를 일으켜준 사람이 바로 레이 부사장이었다. 레이는 내 고민을 물어보며 투수 코치 1명을 붙여 1주일간 특별지도를 받도록 배려해주는 등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 줬다. 레이의 자상함에 감동을 받은 나는 다시 힘을 얻어 한달후 오클랜드 싱글 A팀과의 2번째 등판에서 8이닝 동안 삼진을 10개나 뽑아내며 5안타 1실점으로 2대1 승리를 이끌어내 미국에서 감격의 첫 승을 따냈다. 팀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놀랄 정도의 피칭이었다. 자신감이 붙은 뒤부터는 승승장구, 8승3패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내가 속한 스탁튼 포츠는 싱글 A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81년에는 더블 A로 승격, 엘파소 디아블팀으로 옮겨간뒤 와의 리그 더블 A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6대0 완봉승을 따내는 등 15승3패를 거두며 최다승, 탈삼진왕(150개), MVP를 휩쓸었다. 미국 투수코치들에게서 배운 너클볼 팜볼 등 다양한 변화구와 평균 93마일(149㎞)에 달하는 직구가 그 바탕이었지만 할 수 있다는 정신력이 더 큰 힘이었다. 사실 마이너리그 시절 내내 내 머릿속엔 `살아남아야겠다'는 원시적인 생각뿐이었다. 훨씬 나은 조건에서 운동을 해왔고 나보다 두배는 됨직한 체구를 지닌 그들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다. 나는 아직도 운동선수에게 재능보다는 정신력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후배들에게 얘기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