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순마이웨이] 땀과 눈물의 그라운드 15년 ♣
기사입력 1996년 10월 02일 14시 04분
## 문득 떠오르는 아내와 아이들 얼굴 @@ 감독과 작별인사 …라커룸을 나서니 가을햇살이 … 왜 그렇게 발걸음이 안떨어졌을까. 진작에 결심은 했었지만 분당집에서 잠실구장까지 나서는 길은 천근만근이었다. 팀이 마무리훈련을 시작한 첫날 은퇴 얘기를 꺼낸다는 것도 모양새가 어색할 일이 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매도 일찍 맞는게 좋지."
어차피 겪어야 할 일, 질질 끄는 것도 우스울 것만 같았다.
잠실구장 라커에 들어서니 반가운 후배들 얼굴이 보였다.
내 라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김)형석이와 (김)상호도 보이고 올시즌 룸메이트 였던 (박)명환이도 눈에 띤다. 장난기 많은 수근이의 얼굴을 뒤로 하고 감독실 문앞에 섰다.
기분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손에 잔뜩 땀이 배는 이유는 무엇일까.
콩당거림을 가슴으로 느끼며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감독이 앉아 계셨다.
뵐때마다 미안한 기분이 든다.
`퇴물'을 투수로테이션에 억지로 끼워 넣느라 작년하고 올해 고생깨나 하셨지.
"감독님, 이번 마무리 훈련에 빠지고 싶습니다."
김감독 얼굴을 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한 표정이었다.
"너 어떡할래, 그렇지 않아도 훈련에서는 뺄려고 했어."
"이젠 그만둬야 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네가 알아서 해라."
면담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로가 어떤 얘기가 나올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시원섭섭하다는 게 바로 이럴때 쓰는 말 같다.
감독실을 나서니 허탈했지만 후련하기도 했다.
뭔가 큰 짐을 덜어버린 듯한 홀가분함이었다.
마무리훈련을 위해 운동장에 모인 후배들을 뒤로 하고 차에 올라탔다.
아내와 애들 얼굴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쉽지 않은 야구선수 뒷바라지를 불평 한마디 없이 한 아내와 미국에서 유학중이라 1년에 한번이나 볼까 말까한 상준이(19)와 상운이(18), 막내둥이 성우(7). 모두가 사랑스런 내 가족들이었다.
1년내내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생활이라 비록 충실한 가장 노릇은 제대로 한 적이 없지만 적어도 야구선수로서는 자랑스런 아빠였다고 자부한다. 분에 넘치는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