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대륙의 기인들 (36) ♣
기사입력 1996년 09월 20일 14시 16분
그 깊은 적막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귀는 의귀취선 일행과 떨어져 단신으로 문을 선택하여 들어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 모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미로가 언제까지 계속되는걸까?'
그는 꼬불꼬불한 길을 더듬거리며 계속 전진했다. 안개처럼 희뿌연 기류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귀는 투덜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있나. 이럴줄 알았으면 끝까지 소영이 엉덩이나 바라보면서 따라갈걸. 이런 축축한 통로였다면 슬쩍 가슴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지도 모르잖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답변이 들려왔다.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놈이 그따위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다니 너도 싹이 노랗구나. 대관절 아랫도리는 제대로 자라기나 한거냐?"
놀랍게도 거기에는 조소영이 화난 얼굴로 아귀를 노려보며 지켜서 있는게 아닌가.
아귀는 여전히 능글맞았다.
"과연 우리는 인연이 깊군. 서로 각자의 다른 문을 선택했지만 또 이렇게 만났으니까."
의귀취선이 조소영의 등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애송아, 그건 다시 말해서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까지 가봐야 원래의 그 대전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아귀는 염두를 굴렸다. 의귀취선의 말이 옳았다. 대전의 문과 문은 미로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끝까지 가봐야 본래 그 장소다.
"오는 도중에 다른 길은 없었단 말이겠죠?"
조소영이 아귀를 밀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런 통로가 있었다면 너 따위를 만나기 위해 이리 방향을 잡지는 않았을거야."
이런 상황은 모용추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중도에서 마주친 사람은 놀랍게도 의귀취선의 제자, 즉 이소야였다. 절대의 원한(怨恨)과 애증(愛憎)으로 응집된 숙명적 상대.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모용추가 물었다.
"당신은 다른 통로를 보지 못했나요?"
이소야는 간단히 대꾸했다.
"그렇소."
"그렇다면 서로 엇갈려 가도 원래 우리가 헤어졌던 그 대전으로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겠군요."
"그렇소."
"하지만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어요. 황금사원의 주인이 결코 소모적인 안배를 했을리는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소."
그녀는 이소야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말투가 어떤 사람을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확인하지는 않았다. 다시 만날 수밖에 없으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은 맞았다. 중인들은 모조리 원형의 대전에서 재회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처음의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변해 있었다. 무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