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대륙의 기인들 (35) ♣
기사입력 1996년 09월 19일 14시 38분
환류검과 잔인마도가 봉황의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진의 파공성과 더불어 혈의인들이 그들을 가로 막았다. 혈마사의 자객들.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그들은 각양각색의 병장기를 꼬나잡고 있었다. "멈추시오. 황보소저의 허락 없이는 절대 진입할 수 없소." 환류검이 웃었다.
섬뜩한 살기가 풀풀 날아올랐다. 잔인마도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방관하는 자세다. 마치 다음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
"환환겁겁(幻幻劫劫) 멸멸천하(滅滅天下)!"
잔인마도는 사제가 검광을 폭사하는 광경을 보며 내심 놀란다. 환류검은 자신의 가공할 비기를 서슴없이 전개했기 때문이다.
혈마사의 자객들은 이 순간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저마다 벽력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수중의 병장기를 휘둘러 상대해 갔다.
고막을 찢는 파공성이 터지며 비명이 메아리 처럼 흘러나왔다.
"으-악."
"끄으…윽."
그들은 무림의 일류급 고수였지만 결코 환류검의 상대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입구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드시지오. 사형!"
환류검이 정중하게 안내했고 잔인마도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천도서생은 침중한 어조로 맹주에게 아뢰었다.
"극강의 무공으로 장내를 압도해 버림으로써 감히 방해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고 유유히 곡내로 입장하는 고단수를 사용하는군요. 과연 동영의 제일고수들이라 인정할만 하옵니다."
맹주 천극진이 조용히 뇌까렸다.
"이번에는 내 차례인 모양이다."
그는 어깨를 슬쩍 흔들었을 뿐인데 이미 삼 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일심부의 인검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입구를 가로 막았다.
천극진의 호통이 쩌렁 계곡을 울렸다.
"물러가랏!"
우웅, 하는 굉음이 천극진의 양 소매에서 일어났다. 단순하게 소매가 펄럭였다고 느낀 순간에 어마어마한 기력(氣力)이 휘몰아쳤다.
인검수들은 폭풍에 휘말린 가랑잎 처럼 사면팔방으로 날아가 곤두박질쳤다. 처절한 단말마와 끔찍한 신음성.
장내의 군웅들은 연속 발생하는 놀라운 장면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천극진의 신형도 사라졌다. 금위무사들을 이끌고 왔던 왕야 타르무가 이번에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그는 기어코 참지 못하고 금위무사들을 대동한 채 봉황곡의 입구로 나갔다. 누구도 그들 일행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어느 문이 마음에 드느냐?"
타르무가 매를 날렸고 그 매는 백색문을 선택했다. 그들 역시도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마지막으로 천도서생이 중무련의 고수들을 지휘하여 입구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적이 찾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