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박카스배 천원전] ○이창호9단●안관욱4단♣

기사입력 1996년 09월 17일 16시 11분


**본선 토너먼트 제10국 제9보 : (93∼115)=이른 아침 2호선 전철에 몸을 싣는다. 엷은 망사처럼 부연 아침공기를 뚫고 달리던 열차는 ㄴ기우뚱거리는 동체를 조신(?)하게 움직이면서 보수냐, 철거냐 갑론을박의 도마위에 올랐던 당산철교를 지난다. 철교 아래를 흐르는 칙칙한 암록색 한강물. 왠지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저만치 강변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몇이 보인다. 문득, 다가오는 생명의 위대함, 오염된 강물 깊숙이 아직까지 살아남아준 물고기에게 감사의 메시지라도 보내고 싶은 아침이다. 바둑판 위의 전쟁은 이미 승패를 논외로 이어지고 있다. 흑 99에 백 한점을 살리지 않고 백 100으로 호구친 수가 기민했다. 이창호의 바둑은 종반으로 다가설수록 힘을 발휘한다. 한때 월드컵을 휩쓸던 이탈리아 축구의 '가데나치오(빗장수비)'라고나 할까. 흑 101을 외면하고 백 102의 밭전자. 우상귀 흑의 확장을 견제하고 중앙 흑을 압박하는 다목적 타법이다. 이번에는 뒤로 물러나 백 104로 좌상쪽에 울타리를 친다. 밀고 당기고 나아가는 듯하다가 물러서는 완급조절. 절정에 오른 이창호의 행마는 근육의 수축이완 운동처럼 리드미컬하다. 좌변 백 106의 껴붙임도 보아둔 자리. 흑 113까지 속절없이 당하는 게 아프지만 흑으로서는 지켜둘 여유가 없었다. 다시 백 114. 기이하게도 조금씩 흑집이 줄어드는 반면 백집은 꼭 그만큼씩 불어난다. 살아 움직이는 갑각류의 견고한 껍질 같은 실리의 두터움. 이창호의 바둑은 생물이다. 흑 115는 지나친 침착. 지금은 「참고도」 흑 1로 변화를 구해볼 시기가 아닌지. 백이 순순히 받아주면 흑 B로 찌르는 끝내기도 있다. 흑 1에 백 C면 흑 D. 이 그름도 흑이 좋다는 건 아니다. 그저 실전보다는 낫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