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97)
기사입력 1996년 09월 13일 13시 35분
###### 물장사 이야기 (33) ######. 친절하려고 태어난 남자 같았다. 혹시나 이 남자가 그런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물었는데 완전히 제대로 짚었다.
광장에서부터 골목 골목으로 안내하여 그녀가 만족할만한 면세점을 골라 준 것이다. 불어가 안되는 그녀를 위해 통역에 브랜드 설명에,물건 고르는 것까지 성의있게 해준 것이다. "이럴땐 차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 그러나요? 프랑스 사람들도? 이렇게도움 받았을 때는..." "괜찮습니다.
택시는 여기에서 타십쇼. 몽마르트로 가려면...난 지하철로...". 그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한 뒤 예의 그 성큼성큼 걸음으로 길 건너편의 지하철 입구로 사라져 갔다.
그녀는 양쪽에 쇼핑가방을 든 채 잠시갈등 해야만 했다. 왠지 저 남자를 저대로 보내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머리를 때린다. 아까 광장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에게 책 몇권을 전달 받은 뒤 곧바로 그 친구를 보내고 자기를 안내해 줬다. 지금 보따리 안에 가득가득 들어 차있던 화장품과 향수, 고급 액세서리와 가죽제품들을 고르는 장시간 동안 전혀 불편한 표정 안짓고 점원의 설명을 통역해 주던 남자다. 그러나 그녀가 스리꾼 쫓아가듯 길을 건너 미친년처럼 뛴 것은 그런 친절에 대한 답례 때문은 아니었다. "이 남자 여기서 놓치면 다신 못 만나잖니...". 역 지하도에서 그는 무척 놀라워했다. 혹시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해서 이 여자가 쫓아온 게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 " 지하철을 한번 타보려고요". 그때 기세좋게 브랜드의 지하철이 왔고 그녀는 얼른 다가섰다. "아닙니다. 반대쪽이에요!". 그가 소리치며 말렸을 때 이미 그녀는 지하철에 올라타고 있었다. "`피갈'쪽으로 가야됩니다. `생 라자르'에서 갈아타고 난 `생 미셀'로가기 때문에...". 그는 당황한 와중에서도 성의있게 지하철을 잘못 탔음을 설명하다가 그녀가 깔깔 웃어대자 말을 흐린다. "지하철 나도 잘 탈수 있어요. 작년까지 4년 내내 지하철타고 학교다녔는데요 뭐. 나 서울이나 그게 그거겠죠. 걱정마세요. 지금은 일부터 같이 탄거니깐". 이 남자 표정은 귀엽다. 순진함과 정직함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실은요, 꼭 차한잔 같이 마시고 싶어서 쫓아왔어요. 안되나요. 제가이렇게 부탁해도?" "좋습니다만...". 그는 잠시 정신을 잃어 죄송했다는 듯 금세 친절하려고 태어난 남자로돌아갔다.
그녀의 쇼핑가방을 들어주고, 접어 올라가게 되어 있는 좌석을 펴서 자리에 앉게 해주었다. "아까 도망치듯 가버리시던데요.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요?" "그게 아니고...물건을 너무 무섭게 사대서...". 아, 그랬구나. 그녀는 기실 물건을 너무 무섭게 사댔다. 한국 사람들유명한 싹쓸이 쇼핑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젊은 여자가 뭐 이렇게 겁이없나 놀라는 한편, 실망도 했던 모양이다.
